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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부 Sep 22. 2021

나는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한남도 아닌데

나는 아닌데 괜히 나까지 

나는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한남도 아닌데

싸잡아서 욕하니까 속상했다고요.


'나는 아닌데 괜히 나까지 증후군'이 있다. (내 맘대로 이름 붙였다) 내 정체성의 일부인 조직이나 단체가 욕먹을 때면, 늘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 때문에 욕을 먹는 것 같은 피해의식에 사로잡힌다. 내가 졸업한 학교가 욕먹을 때, 내가 다니는 회사가 욕먹을 때, 우리나라 기업이 해외에서 욕먹을 때, 우리나라가 안 좋은 뉴스로 해외에 소개될 때... 모두 나는 잘못이 없는데 내가 속한 조직이 문제여서, 그 중에 일부 사람들이 극성이어서 괜히 나까지 욕을 먹는 것 같다는 생각. 내가 속한 조직이 특히 젠더와 연관되어 있을 때 그런 생각이 극에 달한다. '나는 한남이 아닌데, 일부 남성들 때문에', '나는 상식적인 수준에서 (특정) 젠더와 관련된 사상을 가지고 있고 이를 드러낼 뿐인데, 일부 극단적인 사람들 때문에' 괜히 비난받는다고 느껴지면 당연히 그 일부 사람들에게 화가 나다가도, 나도 모르게 나까지 싸잡아서 욕하는 상대에게도 화가 난다. 나와는 다른 상대들을 오해해버리는 게, 하나의 덩어리로 묶어버리는 게 편하니까, 쉬우니까 그렇게 하는 거라고. 


지난 여름, 올림픽이 한창일 때 집에 TV가 없어서 네이버를 통해 경기들을 봤다.중계와 동시에 실시간 댓글이 달려서 댓글창을 봤는데, 그만 현기증이 났다. 아무 이유도 없이, 목적도 없이 상대의 성별을 비난하고 싸우고 있는 모습들. 안 보면 그만인데... 자꾸 보이니까 괜히 신경이 쓰이고.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의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행동들인데 그만 무시하려고 해도 무시가 안 됐다.




내가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대학교 모임은 거의 나 혼자만 남자다. 예전에 친구들을 만나서 놀다가 젠더 갈등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성향과 성격이 비슷하니 이렇게 오랜 시간 친구로 지내는 거겠지. 갈등을 싫어하는 우리들은 여성혐오도 남성혐오도 모두 멈춰야한다고 말했다. 페미니즘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마찬가지. 여성의 권리 및 기회의 평등을 위해서 필요하다고 공감했다. 다만 (모임에서 유일한 남자인) 나는 그게 여성이 더 우월하다는 인식을 강조하거나, 남성 전체를 타도하는 방향으로 이뤄지는 모습이 되면,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도 공감을 얻기 힘들 거라고 말했다. 


나는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한남도 아닌데, 나는 아무 잘못도 없는데,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욕을 먹으면 기분이 좋지 않으니까... 아마도 그때까지 나는 이런 생각 속에 살았던 것 같다.


그때 선배가 해준 말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다(제일 좋아하고 믿는 선배다).  자기도 옛날에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지금은 이렇게라도 해야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너무 급격(?)하고 공격적인 페미니즘을 볼 때면 '이렇게 까지 해야 돼?', '이러면 한남들이랑 뭐가 달라?' 생각했었는데, (사람을 죽이는 것만 빼고) 이렇게 강하게 밀어부쳐야만 겨우 1% 바뀌게 된다고. 체면 차리면서 상대방 기분 상하지 않게, 말그대로 젠틀하게 "내 의견은 이렇습니다"하고 말하면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는다고. 다른 것도 아니고 그저 '평등함'이라는 가치를 바라보고 달리는 이들에게 '적당히'를 요구한다는 건 이기적인 시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에 뮤지컬 <유진과 유진>을 봤다. 내용을 모르고 본 건 아니지만 생각보다 무거웠다. 뮤지컬을 보면서 속으로 그냥 좀 더 가볍고 유쾌한 걸로 볼 걸 그랬나 생각도 했다. 이건 애초에 재미있을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니까. 관객 중 몇몇은 눈물을 흘렸다. 훌쩍이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던 것 같다. 화가 나고 슬프긴 했지만, 사실 나는 그만큼 공감이 가지는 않았다. 성폭행이나 성추행 같은 것들이 내 삶을 위협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으니까. 아무래도 성별 때문이겠지. 물론 남자도 성희롱을 당한다. 성폭행을 당하는 사례도 발견되지만 아무래도 성 관련 피해에 관해서는 여성들이 겪는 두려움을 남성은, 남성인 나는 아주 일부분 밖에 알 수 없을 것이다. 유리하다는 말을 이럴 때 쓰고 싶지는 않지만, 확실히 유리했다. 내가 처한 상황들이. 


내가 경험하지 않은 일들 앞에서, 경험할 리 없다고 생각하는 일들 앞에서 우리는 얼마나 무책임해지는지 모른다. 나역시도 너무나 그러한 사람이서 가끔씩 놀란다. <유진과 유진>을 보면서도 어서 이 유진들이 과거의 일에서 빠져나오길 바랐다. '아니 도대체 언제까지 이럴래? 슬픔이 너무 크면, 그 자리를 즐거운 일로 채울 궁리를 해야지'하고 생각했다. 언제까지 슬픔의 구렁텅이에서 빠져 살 순 없잖아 하고 답답한 마음을 품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찰나, 객석 사이에서는 흐느끼는 관객들이 하나 둘 늘어나서, 극이 끝날 때쯤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울고 있었다. 


내가 공감을 못한다 해도, 지금 이 자리에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있다. 그럼 그들의 눈물은 뭘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내 자신이 많이 부끄러워졌다. 그날의 눈믈은 모두 진심이었다고 믿는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만의 트리거가 있다. 만약 내가 본 뮤지컬이 유년시절의 어려움이나 어려웠던 형편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면 나는 분명 내 얘기처럼 느끼며 극 내내 눈물을 흘렸을 거다(<빨래>를 그러면서 봤다). 당장 이해되지 않는 것들을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한 평생이 걸릴지는 모르지만, 내 경험 밖에도 너무나 진실된, 너무나 진짜인 세상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며 살아야하니까. 그게 맞으니까.



며칠 전, 따릉이를 타고 퇴근하는 길. 살짝 핸들을 놓쳐서 휘청거리는 바람에 반대 편에서 다가오는 자전거와 부딪힐 뻔 했다. 고개를 돌려서 사과하는데 그 사람은 이미 인상을 쓰며 나를 노려봤다. 그래, 내가 잘못했지.내가 너무 잘못했는데도 그런 표정을 보니 속에서는 화가 났다. 만약 그 사람이 길을 멈추고 나에게 뭐라고 했다면 나도 같이 따졌을 것이다. 다다다, 하고 쏟아낼 것이다. 그러다가 왜인지, 내가 늘, 소리칠 수 있는 사람 앞에서만 화를 내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방금 마주친 사람은 힘이 덜 세보이는 남자였다. 나보다 약해보이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나보다 서툴어보이는 사람에게만 짜증낼 준비를 하고, 어디 한 번 걸려봐라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런 모습이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문득 대학 친구들과 나눴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아니, 나는 페미니즘 인정한다니까. 그런데 무조건적으로 남성에 대한 적대감을 갖는 건, 아무래도 내가 남자다 보니까 받아들이기 힘들 때가 있지"라고 대답했던 나. 오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신보다 (물리적으로) 강한 상대에게 어찌할 수 없었던 상황들과 부당한 대우들이 겹치다보면, 무조건적인 반감이 생길 수도 있겠다고. 나는 너무나 그런 사람이다. 


길거리에서 누군가 나를 치고 갔을 때 나보다 덩치가 큰 남성이거나 학생들이면 아마도 아무말 하지 못하고 지나갔을 것이다. 그런데 나랑 비슷하거나 어려보이는 학생이었다면? 불러세우고 따졌겠지. 나의 피해를 말하고 정당한 보상을 받기 위해. 내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는 과정에서도 나는 상대를 평가한다. 그리고 그 기준이 성별이 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는 점. 여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내가 그동안 얼마나 편협한 사고 속에서 살아온 건지 조금은 깨달을 수 있었다. 이 깨달음이 반복되면 우리 모두는 누군가를 무조건 비난하는 일을, 이해하지 않으려 외면하는 일을, 미워하는 일을 모두 그만둘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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