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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부 Mar 12. 2022

덜 행복한 하루가 애틋하다

공모전에서 탈락한 이야기라고 해도 나는 소중해서


가난한 이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소설을 읽었다. 인격모독을 당하면서도 자취방 월세를 감당하기 위해 꾸역꾸역 이상한 회사로 출근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도 읽었고, 집 나간 엄마가 남긴 빚이 많아서 매일 저녁시간 마다 가장 먹고 싶은 메뉴는 포기하고 배를 채우기 위해서만 식사를 하는 청년의 이야기도 읽었다.


소설 속 주인공들의 일상은 내가 살아가면서 겪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던 내용들이었다. 내 삶이 영화와 같다면 절대 연기하고 싶지 않은 대본인데, 왜 나는 다행스러움보다 부러움이 더 크게 느껴졌던 건지. 분명 내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행복의 모양을 조금씩 빗겨가는데, 신기하게도 두 눈이 읽어내는 장면마다 밑줄을 긋게 되고 행복함을 느꼈다. 소설을 읽는 내내 ‘나는 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적었던 수많은 일기들이 떠올라 부끄러워졌다. 마치 지금은 행복을 모르는 것처럼, 언제나 스스로를 행복을 기다리는 사람으로 만들고는 했다.



최고의 순간이

전시되는 삶을 살다 보니,

최고가 되지 못한

최선들의 의미를 자주 잊고 산다.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에도, 그 순간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이 행복함이 지나가버린 순간을 걱정했다. 행복한 순간을 떠난 자리에는 그 그림자만 덩그러니 남아있을까 봐. 나는 자주 궁금했다. 우리가 어느 순간 정말 행복하다고 느꼈다면, 그 이외의 시간들은 모두 행복하지 않은 순간인 걸까.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행복한 순간의 반대는, 그러니까 행복한 순간이 아닌 시간들은, 불행한 순간이 아니라 덜 행복한 순간이다. 덜 행복한 순간이 곧 불행한 순간인 것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자 조금 숨이 쉬어졌다.



앞으로 이 매거진을 통해

내가 적었던 시를

한 편씩 소개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건 시집은 아니다. 시와 함께 시를 쓸 때의 마음도 덧붙였기 때문이다. 내가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는 '숨기거나 참지'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걸 안다. 창피하지만 글을 쓰면서도 늘 들키는 글을 쓰고 싶었다. 그건 시도 마찬가지. 내가 이런 마음으로 썼다고, 나의 이런 생각을 알아주길 바란다고. 그래서 나와 닮은 사람과 닮은 생각을 하면서 행복해지고 싶다고 유치한 어린 아이처럼 계속 매달렸던 것 같다.


고백하자면 여기에 적은 이 시들은 신춘문예에 응모했다가 떨어진 것들이다. 지난 겨울 새해를 기다리며 폭신한 함박눈처럼 내 마음도 한껏 부풀어 올랐지만 연말이 되고 새해가 되면서 그만 힘 없이 추욱 가라앉았다. 보통 신춘문예 발표는 1월 1일에 지면을 통해서 진행되지만, 당선자에게는 12월 중순이 지나면 개별적으로 연락이 간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괜히 연말까지 미련을 품었던 것이다. 부끄럽지만 1월 1일에는 인터넷 뉴스에 내 이름을 검색해보기도 했다.


아무래도 정성의 문제다. 실력이 부족하다는 걸 알면서도 정성을 들인 것에는 ‘혹시나’하는 기대를 품게 되니까. 아니, 애착의 문제다. 기대하고 들여다보고 반복해서 어루만지다 보면 나도 모르게 애정이 산만큼 커지니까. 그때부터는 내가 만든 결과물에 대해 객관적일 수 없게 된다.



가장 행복하지 않을 뿐,

불행한 것은 아니니까.


20XX년 1월 1일. 내가 응모한 신문사들에서 발표한 신춘문예 당선 시를 쭉 읽어보며 부끄러움이 자꾸 커졌다. 안 그러려고 해도 나도 모르게 내가 썼던 시가 떠올랐다. ‘그렇지. 역시 이정도는 써야 신춘문예에 뽑히는 거지. 나는 고작 이런 걸 시라고 써 놓고서 뭘 기대했던 거야’ 하며 스스로를 다그쳤다.


하지만 역시 애착의 문제였던 걸까. 노트북 바탕화면에 있던 ‘20XX 신춘문예’ 폴더를 휴지통에 담아두고서 끝내 삭제버튼을 누르지는 못했다. 최근의 섭섭함과 아쉬움은 컸지만, 그 이전에 느꼈던 설렘과 기대를, 일상을 활기차게 만들어 주었던 기분 좋은 두근거림을 나는 잃고 싶지 않으니까.


이제는 안다. 최고의 작품들이 신춘문예에 뽑혔지만, 신춘문예에 뽑히지 않은 바탕화면 속 작은 폴더의 이 시들은 결국 나의 최선이었다고. ‘가장’ 잘 쓰지 못했을 뿐, 의미 없는 게 아니라는 것을. 서류전형에서 탈락해버린 자소서들도,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생일소원들도, SNS에 딱히 자랑할 만한 일은 없지만 마음에 몽글몽글 여유가 차는 내 일상도 모두 의미 없는 게 아니다. 가장 행복하지 않을 뿐, 불행한 것은 아니니까. 덜 행복한 순간들로 가득 차 있는 나의 하루가 그제야 애틋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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