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마스 러브

가장 안전하고 성실한 사랑의 모습을 싣고 달립니다

by 체부

다마스 러브



퇴근길에 보았다


하얀 다마스

백설기 같은 몸속으로

한 소녀가 달려드는 것을


앞 유리 너머

한 가정의 세계에서

오동통 살집 오른 소녀가

사내의 손을 잡고

재잘재잘 털어놓는 하루를

하얀 다마스

내 앞을 스쳐 지날 때까지 쳐다보고 있었다


어릴 적에 들었다

다마스는 자동차도 아니야

타다가 사고라도 나면

그만 하늘로 돌아가는 거야

사랑하는 사이라 말하는 거야


사랑하기 때문에

탈 생각 안 했던 조그만 차에

뛰어드는 소녀의 웃음은 아마도 사랑이라

덜컹덜컹 허물어지는 속을 싣고

달렸다


가로등 없는 길도

오솔길 나무 사이로 사냥한 노을처럼

환히 비추며

달렸다




참고로 이 차는 다마스가 아닙니다 ⓒ체부


내가 어렸을 때, 프린터 잉크 회사의 영업사원이었던 삼촌은 다마스를 몰고 다녔다. OO라는 회사 로고가 크게 프린트된 하얀차였는데, 가끔 출근길에 나를 학교 앞까지 태워다주고는 했다. 차 안에는 여러 회사의 프린터며 잉크가 빼곡했다. 출렁이는 잉크를 싣고 좁은 길을 덜컹덜컹 달렸다. 나는 그 다마스가 좋았는데, 할머니는 그 다마스를 싫어했다. 자동차 같은 거 잘 모르는 할머니였는데, 어디선가 들은 듯했다. 다마스가 가장 위험한 차라는 사실을. 나도 누군가한테 들은 것 같다. 다마스는 짐을 많이 싣도록 설계된 차라서, 안전장치가 많이 없다고. 매일 아침 출근하는 삼촌을 배웅하며 할머니는 삼촌한테 운전 조심하라는 당부를 귀에 못이 박히게 했다. ‘타다가 사고라도 나면 황천길 가는 거라고’ 걱정하던 그 말에 어렸던 나는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났다. 그건 아무래도 할머니의 큰 사랑 때문이었겠지.


어느 날 길을 걷다가 다마스에 나란히 앉은 부녀를 보았다. 만약 할머니가 내 옆에 있었다면 “아이고, 애를 왜 저런 차에 태운대”라고 했겠지만, 나에겐 가장 안전하고 성실한 사랑의 모습이었다. 소녀는 앞으로도 변함없이 하얀 다마스에 제 몸을 맡길 것이고, 아버지는 언제나 안전하게 운전을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앞길은 느릿느릿 오후를 지나는 샛노란 노을이 환히 비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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