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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부 Apr 19. 2022

사랑을 의심하는 일

엄마, 사랑하지?

20대 초반. 연애를 처음 시작할 때는 상대와 가족이 될 심산으로 애정을 쏟았다. 그러니 연애가 잘 될리가. 늘 내가 넘쳤고, 상대는 놀랐을 것 같다. 잠깐의 호감으로 다가온 사람에게도 늘 절대적인 내편이 되어달라고 떼를 썼던 게 아니었을까.


세상에 믿을 사람은 자신 밖에 없다는 사실을 몰랐던 때, 나에겐 누구보다 믿고 의지할 사람이 필요했다. 어떤 상황이든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이 필요했었다. 살아오는 내내, 힘든 상황에서 내가 믿고 의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에 와서 봐도 없었던 것 같다.) 보통 그런 역할은 가족이 하는 걸 텐데, 뭐랄까 나에게는 그런 가족이 없었다. 


어릴 적 아빠가 죽고 난 뒤, 엄마와 형 나 이렇게 세 식구가 같이 살았는데 나는 중학생 때 혼자 외가댁으로 들어갔다. 나와 3살 차이나는 형은 이미 학업을 포기했고(결국 고등학교를 중퇴했다), 엄마는 열심히 일을 했지만 집에는 늘 연체통지서와 고지서가 날아왔다. 급식비는 지원을 받았지만, 학교를 다니는 일은 그것보다 들어가는 돈이 많았다. 외할머니에게, 이제 막 경제생활을 시작한 이모와 삼촌들에게 손을 벌리며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됐다. 그래서인지 여전히 할머니가 더 엄마 같은 마음이 든다.


할머니는 나에게 최선을 다해줬지만, 다른 가족들도 나를 (조카보다는) 동생처럼 챙겨줬지만, 내가 힘들 때 전적으로 의지할 수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할머니에겐 나 말고도 챙겨할 자녀가 너무 많았고, 이모 삼촌 들은 모두 각자의 가정과 삶이 있었다(생겼다). 가벼운 고생이나 불평은 할머니 앞에서 웃으며 보일 수 있었지만, 정말 힘든 일은, 마음이 무너질 정도록 막막한 일들은 입 밖으로 꺼내지를 못했다. 내가 안 그래도 버거운 우리 가족의 삶에 내가 짐을 지우는 걸까봐. 결국 언젠가 다 갚아야 하는 마음의 빚처럼 느껴졌다고 할까.



내가 여기까지 얘기했을 때, 내 앞에 앉은 J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 너도 어른이니까, 경제적인 부분은 스스로 해결할 수 있으니까, 가족으로서 엄마를 의지하면 안 돼?"


그게 잘 모르겠다. 말처럼 쉽지가 않아서.

내가 8살 때 아빠가 돌아가셨는데, 형과 나를 혼자 키우기 막막했던 엄마는 우리를 고모 집에 맡겨놓고 집을 나갔다. 그때 엄마 나이가 겨우 31살이었다. 엄마의 가출(?)은 아마 어른들끼리는 모두 합의한 내용이었을 거다. 지금의 나보다 몇살이나 더 어린 나이. 혼자서 키우기 어려웠을 거다. 다 이해하는데... 이해하는 것과 믿을 수 있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것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알게 되었다. 


8살. 어리면 어리고 크면 크다고 할 수 있는 나이. 내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이나, 아빠의 장례식 같은 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데 그날의 기억은 너무나 선명하게 떠오른다. 엄마는 우리를 고모집에 데려다주면서 정글북 만화가 그려진 스케치북과 인어공주 손목 시계를 사줬다. (둘 다 당시에 내가 너무 좋아하는 만화였다. 인어공주 손목시계는 시계안에 물이 들어있는 볼록한 렌즈 모양이었다.) 시계를 가지고 놀면서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곧 엄마가 올 거라는 약속. 


스케치북에 그려진 모글리 그림에 색을 다 칠해도 엄마는 오지 않고, 버려졌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았는지 형과 나는 꼬박 3일을 내내 울었다. 


그 다음은 잘 모르겠다. 어쨌든 엄마는 약속을 지켰다. 얼마나 지나고 나서 우리를 찾으러 왔는지는 물어보지도 대답을 듣지도 못했지만, 엄마는 다시 돌아와 우리 엄마가 됐다. 분명 커다란 결심이었을 텐데, 너무 고마운 일인데, 왜 그 사랑을 보지는 못하고 떠나간 순간의 잔상이 더 오래 남는 건지. 왜 낯선 곳에 남겨졌을 때의 기분이 더 선명하게 떠오르는 건지 모르겠다.


누군가를 믿고 싶다. 

어떻게든 믿고 끝까지 의지하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속으로 물어 볼 때가 있다. "그래도 엄마를 사랑하지?" 응. 사랑을 하는데 그 사랑을 의심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누군가를 믿는다는 게 이렇게 어렵고 절실한 일이라는 걸 내가 8살 때 이미 알아버렸는데, 그 마음이 여전히 정리가 안 돼. 사랑은 하는데, 사랑을 의심하게 된다.


있잖아.

내가 이 이야기를 처음으로 J에게 했을 때, J는 내가 자기를 좋아하는 줄 알았대. 그래서 그 이후로는 아무한테도 얘기한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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