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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부 Jul 30. 2022

괜찮아, 내가 좀 더 낼게

너는 모르겠지만, 이 말이 나는 너무 불편하다니까



"괜찮아, 내가   낼게"처럼 

  고맙고 불편한 말이  있을까?


친구와 휴가를 다녀오는 길에 같이 쓴 돈을 정산했다. 1일차 어디 얼마, 어디 얼마. 날짜별로 리스트를 작성해서 1인당 경비는 얼마고, 여기서 각자 쓴 돈을 제하면 너가 나에게 얼마를 보내주면 된다고. '더보기' 버튼을 눌러야할 만큼 긴 카톡 메시지를 보고서 친구는 "이렇게까지 보내줄 필요는 없는데"라고 말했다. 맞아. 그럴 필요까진 없는데 이건 내 성격탓이기도 하다.


친구는 또 말했다. "여긴 내가 낼 테니까 가자고 한 곳이잖아. 이건 엔빵하지 말지." 그랬다. 거긴 내 허용범위를 벗어난 곳. 혼자였다면 절대 가지 않았을 곳이지만, 상대가 가자고 하니까 어쩔 수 없지 하며 끌려가듯 간 곳. 뜨듯미지근한 내 반응을 보며 친구가 "여긴 내가 쏠 테니까 가자"라고 말했던 곳.


가서는 맛있게 먹었다. 비쌀 수록 맛있는 건 아니지만, 비싼 건 대부분 맛있으니까. 그런 곳에서 음식을 맛있게 먹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 어쩐지 조금 창피하다. "너무 맛있어서 기분 좋아"라고 말하고 한번 웃으면 그만일텐데 "그래도 맛은 있네"라고 괜한 소리를 하거나 '난 별론데 어쩔 수 없이 따라온거야'라는 뉘앙스를 풍긴다. 친구가 가자고 했을 때 선뜻 "그래"라고 말하지 못한 이유가 비싼 가격 때문이라는 걸 들키기가 싫어서. 아니 이미 다 들켰다는 걸 아는데, 그걸 다시 한번 확인받는 게 싫어서 그렇다. 어쩜 이렇게 못날 수가. 나이가 들어도 변함없이 못났을 수가.




비싼 거 많이 먹으면 좋지 않아?

사주는 사람들이 많으면 좋지 않아?

여유로운 연인이나 친구들 사이에 속해서

너도 그런 일상을 살아가면 좋지 않아?


누가 하는 건지도 모르고, 누구에게 답해야하는 건지도 모르는 질문들이 다가온다. 다 먹지도 못할 비싼 음식들을 시키고 남으면 버리는 식사 자리. 바다가 보이는 창이 달렸다는 이유로 십만 원의 차이가 나는 방에 머물고 싶다는 마음. "피곤하니까 택시타고 가자"는 다정한 말. "이왕이면 좋은 것 먹고, 좋은 것 보고, 좋은 것 입고, 좋은 곳에서 잠도 자보고. 그게 뭐가 나빠? 그게 더 좋은 거 아니야?"하고 묻는 친구들.


"괜찮아, 내가 좀 더 낼게"라는 말이 나는 너무 고맙지만, 그래서 딱 고마운 만큼 불편하다. 그런 것들을 겪으면 나는 '세상에 나 혼자였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어서. 나의 뿌리들이 자꾸 떠오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필요한 돈 만 원, 오만 원, 십만 원. 에어컨 대신 선풍기로 버티는 여름이나 몇천 원 더 싸다는 이유로 여전히 시장에 배낭을 메고가 잔뜩 짊어지고 오는 엄마와 엄마의 엄마.


모든 가치는 상대적인 거니까, 상황과 사람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이런 건 유전인지, 엄마와 엄마의 엄마와 엄마의 아들의 생활은 묘하게 닮아버린다.


나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척하는 게 너무 허망하게 느껴질 때. 그냥 나 혼자였으면 좋겠다는 아득한 생각이 들 때. "내가 더 낼게"라는 말 앞에서 고맙고 불편한 마음이 들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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