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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부 Jul 07. 2022

가난이 왜 무서워?

작은 노력들이 의미없어질까 봐

우리 집이 가난하다고는 생각했지만, 그렇게'까지' 가난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명절이면 모여서 배부르게 맛있는 음식도 먹고, 몇 년에 한 번이지만 그래도 집을 벗어나 다른 곳으로 짧은 여행도 가고. 더우면 에어컨을 켜고 추우면 보일러도 틀고.


그런데 좀 가난했었나 보다. 


며칠 전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주민센터에서 보조금이 들어왔다고, 그 돈으로 엄마가 밥 한 번 사주겠다고 했다. 엄마가 사주는 밥을 먹는 게 얼마만이더라. 엄마 집에 놀러갔을 때 엄마가 해주는 집 밥은 종종 먹었지만, 엄마가 사주는 외식은 수 년만인 것 듯했다. 


엄마가 날 데려간 곳은 집 앞의 고기 뷔페. 1인당 25,000원. 이번에는 자기가 살 테니 많이 먹으라고 엄마가 말했다. 나는 도톰하게 썬 고기를 먹고 엄마는 얇은 우삼겹을 먹었다. 이가 흔들려서 얼마 전에 치과에 가서 뽑았다고 했다. 그래서 두껍고 딱딱한 건 잘 씹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엄마를 보고 순간 겁이 났다고 하면 내가 너무 못난 사람일까.


밥을 다 먹고 먼저 일어나 그냥 내가 계산하겠다고 했더니, 엄마는 마스크도 쓰지 않고 카운터로 달려나갔다. 다리가 아파서 뒤뚱뒤뚱. "오늘은 엄마가 사겠다고 했잖아. 엄마가 살 거야" 하고 말하는 표정을 보니 괜히 슬픈 마음이 들어서 알겠다고 했다.


눈 앞에 있는 사람이 나는 너무 위태한데, 정작 자신은 그 위태로움을 모르고 있다. 그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어쩌면 모든 걸 다 알면서도 '그냥 너도 잠깐은 더 모른 체 하고 있어도 돼' 하는 배려인 걸지도 모르겠다.





가난이 왜 무서워?

지금부터라도 하나하나 노력해서 가난에서 벗어나면 되잖아.


맞는 말이다. 맞는 말인데

내가 오늘 왜 무서웠냐면


가난은 작은 노력들을 의미 없어지게 만드는 것 같아서. '칫솔모가 벌어지기 전에 칫솔은 매달마다 새 걸로 바꿔야지' 하는 사소한 다짐들. '우리 가족 매달 각자 5만 원씩 모아서 나중에 여행가자' 하는 기쁨의 약속들이 '이게 다 무슨 소용이야' 싶은 마음으로 너무 빨리 변해버릴까 봐. 그런 게 무서워지는 마음이 성큼 다가온 것 같아서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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