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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부 Jul 10. 2021

엄마에게 보이스피싱을 당하는 꿈

당할까봐 말고 할까봐 걱정이었어


꿈을 꿨다.

보이스 피싱을 당하는 꿈.

엄마에게.


주말에는 정말 오랜만에 내가 먼저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간밤 꿈에 엄마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그 꿈은 내가 보이스 피싱을 당하는 꿈이었다. 우습게도 꿈에서 나에게 전화를 걸어 보이스 피싱을 시도하는 사람이 엄마였다. 꿈의 알고리즘은 하도 복잡해서 알 수 없겠지만, 꿈 속에서 엄마는 한 개그우먼이 보이스 피싱을 하는 조선족을 흉내내는 것처럼(개콘이 한창 재밌을 때였다. 그 코너를 좋아했다) 어눌한 말투로 나에게 거짓말을 했다. "귀하의 계좌가 외부에 노출되었으니 얼른 다른 계좌로 돈을 이체..."


그냥 웃고 넘어갈 개꿈이지, 뭐 개꿈! 그런데 이번에 엄마에게 전화를 했던 건, 괜한 걱정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어떤 미안함때문이었던 것 같다. 꿈에서조차 나에게 걱정을 시키는 사람, 거짓말을 하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린 것에 대한 미안함.


언젠가 아는 사람이 보이스 피싱을 당했던 얘기를 해줬다. 보이스 피싱인 줄 모르고 순수하게 계좌번호를 불러주고 있었는데, 상대가 계좌에 돈이 얼마나 있는지 먼저 묻더란다. 진짜로 돈이 없어서 솔직하게 통장 1번에는 몇 만원... 통장 2번에는 몇 천원이라고 말했더니 전화를 뚝- 끊더라는. 다행이지만 왠지 모르게 자존심이 상했다고 했다. 나는 가난해서 보이스 피싱도 무시하는구나.


사실 엄마가 보이스 피싱을 당하는 건 별로 걱정이 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엄마도 가진 돈이 없으니까. 이체하려고 해도 이체할 수 있는 돈이 없으니까. 내가 걱정되는 건 엄마의 순진함이다. 순한 사람의 무해함이 갖게 되는 어떤 유해함들. 그러니까 나에게 엄마는 보이스 피싱을 '당하'는 게 아니라, '할'까봐 걱정이 되는 존재였다. 누군가가 이게 정말 좋은 거라고 우긴다면, 범법도 아니고 아무 잘못도 없는 거라면, 그 개그우먼이 흉내내는 순진한 사람들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너무나 진심으로 최선을 다할까봐 그런 게 걱정이 된다.




마음의 거리가 가까운 사람이 있었는데,

언젠지 모르게 멀어졌다.


그 사람은 나를 자주 생각해주었던 것 같은데, 지나가는 말로 종종 나를 꾸며주고 싶다고 했다. 꾸며주기보다는 브랜딩해주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이런 저런 고민을 얘기하거나, ‘나 같은 캐릭터는 요즘 사람들의 관심사와 점점 멀어지고 있어'라고 말하면 '흠, 이유가 뭘까...' 같이 심사숙고해주었다. 그리고 대답하길, 요즘 사람들은 더 이상 순한 콘텐츠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너는 순한 사람이잖아. 순한 사람이 만들어내는 순한 이야기들에 관심을 가지기엔, 그걸 믿고 의지하기엔 삶이 너무 각박해진 거야. 힘들고 어려워진 거야. 여유가 없어진 거야."


나도 안다. 하지만 내가 믿고 있는 건 - 내가 순한 사람이라서 순한 이야기를 적는 건 맞지만, 내가 적는 이야기가 더 이상 재미가 없어서지, 순해서 외면받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다. 언젠가 다시 글을 갈고 닦아서 순하지만 읽고 싶은 글을 적을 거야. 순하지만 믿고 싶은, 의지하고 싶은 글을 적을 거야. 순한 사람이 순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데 나는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되고 싶다는 열망이 크다. 그건 내가 아는 가장 순한 사람을 위해서. 그녀의 행복을 위해서겠지.




나이를 먹어갈수록 엄마와 할머니가 했던 말들이

진리 같아서 가끔 무섭다.


'회사 관두지 말구 조금만 더 버텨봐', '힘든 건 다 지나가', '할머니는 네가 시험봐서 선생님 했으면 좋겠어' 같은 말들. 예전에는 내가 다 흘려들었던 말들이 - 이제는 허황된 말들만은 아니었구나 생각이 든다. 다시 돌아가도 나는 결국 같은 선택을 하겠지만.


어른의 말이 이렇게 사실인데, 어제 엄마가 전화로 했던 말은 뭐였지. '독감 주사 맞아라', '밥 잘 챙겨 먹어라'. 그리고 또 '잘 챙겨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이랑 '기죽지 말라'는 말들. '잘 될 거야. 이제 잘 되겠지' 그렇게 나의 안녕을 빌어주는 말들이 모두 사실이라면. 모두 사실일 거야. 그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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