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체부 Sep 23. 2022

내리사랑은 금지합니다

엄마랑 나는 스물세 살 차이가 난다



엄마랑 나는 스물세 살 차이가 난다. 형과 엄마는 스무 살 차이. 나의 스무 살, 스물세 살을 떠올려보면 너무 아득해진다. 닥치면 뭐든 다 하는 게 사람의 인생이라지만, 그 닥침을 계속 미루고 있는 건 아무래도 두려움이겠지.


내가 쉰이 되면 엄마는 일흔셋. 그때도 엄마가 정정했으면 좋겠다. 일흔셋은 좀 많은 것 같으니, 5년만 더 당겨야지... 엄마가 예순여덞이 되었을 때, 모은 돈을 가지고 시골 한적한 곳에 가서 집을 짓고 살고 싶다. (지금 돈 모으는 속도로는 어려울 것 같지만...) 조그만 텃밭을 가꾸며, 힘겹게 올라야 하는 계단도 없고, 쪼들림도 없고, 위협적인 이웃들도 없는 곳에서. 엄마가 화를 내지 않아도 되는 하루 속에서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 요즘 시간이 날 때면 EBS <건축탐구 집>을 자주 본다. 그것만 본다고 해서 우리 집이 뚝딱 생기는 건 아니겠지만.


형이 결혼을 하지는 않을 것 같고, 나도 결혼을 하지는 못할 테니까 우리 가족의 대는 아마 여기서 끊기게 될 것이다(99% 확실). 요즘에는 그런 생각을 해. 살면 살수록 힘들어지는 가족들에게는 하느님이 알아서 대를 멈춰주는 게 아닐까 하는 웃기고 끔찍한 생각.



내리사랑이라는 말이 있다. 어쩌면 집착이라거나 대리만족이라는 단어로 바꿔부를 수도 있겠지. 부모는 자기가 누리지 못했던 것을 자녀에게 투영해서 실현시킨다. 나는 못했지만, 너는 부족하지 않게. 나는 힘들었지만, 너는 덜 힘들게. 그게 사랑이라는 걸 너무나, 너무나 잘 알지만, 그 사랑을 나에게서 끝내기로 하자. 딱 나로 끝내고 엄마랑 나는 우리 서로가 공평하게 지금 누릴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사이좋게 나눠가지기로 하자.


내가 지금 서른넷. 이제부터 십 년 동안, 엄마와 떨어져살면서 잘 준비한 다음에 나 마흔다섯, 엄마 예순여덟에 다시 만나는 거야. 그동안 엄마가 너무 빠르게 늙어 있을까 봐 걱정이다. 그리고 십 년은 또 너무 빠르니까, 시간이 너무 빠르니까 걱정이다. 그 시간동안 내가 무엇도 이뤄놓지 못할까 봐. 십년 후에 나는 어떤 내용의 일기를 쓰고 있을까.


2022년 8월 30일.

그때의 여름도 덥겠지?




매거진의 이전글 가난이 왜 무서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