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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부 Aug 18. 2022

체크리스트가 필요한 하루

나는 혼자 있을 때 심심했던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어제는 커뮤니티에

‘자살한 친구가 부러워요’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댓글에는 공감된다는 의견과 이런 글은 자살 및 우울감 조장 글이다, 불쾌하다는 의견이 반반이었다. 애인은 자기는 하나도 이해할 수 없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이해가 안 가. 도대체 왜 죽고 싶은 거지?’하며. 나는 어느정도 공감이 간다고 말했다. 자살한 친구가 부럽다는 감정에 대한 공감이었을까? 가끔은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을 때가 있으니까.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부럽다’는 말을 먼저 꺼낸 사람이 그런 감정을 아무렇지 않게 싸지르는 모습에는 반감이 들었지만. 내가 공감이 갔던 부분은 인생을 영화에 비유한 표현이었다. 결말이 궁금하지 않은 지루한 영화를 입장료를 내고 들어왔으니 끝까지 보고 있는 기분.


애인은 아이돌 덕후다. 좋아하는 아이돌 L이 올해에 꼭 신인상을 받아야하는데 최근 너무 막강한 신인 N이 등장해서 하루하루가 걱정이란다. 이대로 가다가는 신인상을 고스란히 빼앗길까(?) 봐.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N의 음악을 듣고, N이 나온 유튜브를 보고자꾸만 N에게도 빠져드는 자신이 괴롭다나. (N이 딱 1년만 늦게 데뷔했으면 모든 게 평화로웠을 거라고 말한다.) 애인 때문에 나도 L을 좋아하는 척 하는데(사실 나도 모르게 좋아하고 있다), 어제는 나란히 누워서 폰을 하다가 내가 말했다.

“이번에 나오는 L의 앨범이 엄청 좋아야할 텐데. 이번에 대중적으로 확 떠야 신인상 받을 텐데.”


그랬더니 애인은 정말 그렇다면서 미간을 찌푸린 채로 대답했다.

“내가 얘네 앨범 잘나오기를 매일 기도한다니까. 요즘 그거 말고는 걱정이 하나도 없어.”

“정말? 정말 걱정이 하나도 없어?”

“응. 내가 그거 말고 걱정이 뭐가 있겠어.”


나름의 고민은 있겠지만, 그말에는 거짓은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자고 나면 또 어떤 콘텐츠가 유튜브에 올라올까? 다음에는 또 어떤 아이돌이 세상에 등장할까? 이런 궁금증만으로도 하루하루가 너무 기대된다고 말하는 애인. 그래서 지금 자기가 죽는다면, 지금 당장 지구가 멸망한다면 너무 슬플 것 같다고 말하며 울상이 된다. 이 표정에는 거짓이 없다는 걸 나는 너무나 잘 안다.




언젠가 일기장에 이런 글을 적은 적이 있다.

동경하는 마음이 질투로 변하지 않게 

  나도  하루에 최선을 다합니다.”


나는 나 이외의 그 어떤 존재로도 살아보지 못했으니, 무언가를 평가하기엔 충분한 자격이 없다는 생각을 하고 산다. 누군가의 ‘걱정 없는 마음’을 시기하기에도 비웃기에도 무시하기에도 부러워하기에도 여전히 여전히 충분한 자격이 없으니까. 죽고 싶다고 생각하는 대신 일기장에 뭐라도 적고 보는 거였다.


누군가를 시기하지 않으려면 자긍심이 필요한데, 그 자긍심은 오늘 내가 한 일에서 오는 것 같아서. 그렇게 병적으로 체크리스트를 만들고 하나씩 지워갔는지도 모르겠다.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 심심해"라고 말하는 애인에게, 나는 혼자 있을  심심했던 적이 없다고, 매일 매일 새로운  일이 넘쳐났다고 말하고는 했다.


밀린 숙제를 하듯이 하루를 살아내고 나면 그래도 한 걸음씩 죽음과 멀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어느 날에는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지만. 그래도 뒷걸음질 치지 않는 것만으로도. 재미는 없는 영화지만 계속 반복해서 돌려볼 수는 있으니까. 그러다보면 애정이 생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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