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을 축하하는 후라이팬 위로 노란 달이 떴다
태어나보니
겨울
봄이 있는 줄 몰랐어요, 당연히
태어나기 전에는요
구멍이 닫히고 나서야 후회를 했어요
조금 더 기다렸어야 했을까요, 하지만
나는 보채지 않았는 걸
얼른 나가고 싶다고
배를 발로 툭툭 건드리는 건
너무 아기 같은 일이잖아요
그러니 이건 아빠와 엄마의 잘못
내가 바란 적이 있던 가요
당신도 바란 적이 없었다면
글쎄요
우리는 이런 점이 똑 닮았어요
양수가 터져버린 순간부터
아빠 엄마의 입술은 초스피드 건조
침을 첩첩 발라도 할 말은 없음
세상의 모든 부모는 생일축하의 이유를
하나쯤은 알고 있어야 해요
축하의 이유를 알지 못하는 기념일은 필요한가요
투명하고 멍청한 생일은 죽지도 않고 또 돌아옵니다
혼자 있고 싶어요 살고 싶지 않아요
아니 혼자 있고 싶다는 건 거짓말이에요
살고 싶지 않은 건 진심이네요
그런 의미로 오늘은 처음이자 마지막 기념일
축제의 시작은 최후의 만찬이니
나는 셰프가 되어
만찬 후 내 머리통을 후려칠 후라이팬을 달궈요
냉장고에서 오래된 달걀 한 알을 꺼내
톡톡, 안녕히 계세요
하직 인사 후 뜨거운 기름에 퐁당하는데
어머, 쌍노른자다
생일이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다음 생일이 될 때까지 나는 아직도 살아있어요 행운은 예고 없이 그러니까 이유도 없이 쌍노른자는 터지지도 않고 그 좁은 집에서 잘 살아온 듯이
주책맞게 울컥했지 뭐예요
팔팔 끓는 기름 위에 쏟아진 눈물이 폭죽처럼 팡팡 튀고
이유 없음이 살아가는 이유가 되는 행운의 불운의 행운의 불운의
생일을 축하하는 프라이팬 위로
노란 달이 두 개
배시시 떴습니다
일상은 대체로 평온한데, 이따금씩 거대한 폭풍처럼 시련이 닥칠 때가 있다, 역치가 최저로 떨어졌을 때 ‘내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이 고통은 다 뭐야’ 싶었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는 시야가 좁아져서 다른 생각은 할 수가 없다. 지금도 누군가는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자라오면서 엄마에게 상처를 준 순간이 참 많지만 그 중에서도 후회되는 건 “엄마는 나를 왜 낳았어?”인 것 같다. 책임지지도 못 할거면서. 키우느라 힘만 들면서.
좋아하는 드라마 <멜로가 체질>에서 이런 대사가 나온다.
“엄마는 나를 왜 낳았어?”
“그럼 너는 왜 나왔는데?”
“나야 엄마가 낳았으니까.”
“난 네가 나오니까.”
주인공과 엄마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이 농담 같은 대사가 어떤 날에는 큰 위로가 됐다. 왜 낳았는지, 왜 태어났는지 모르겠을 순간이 찾아올 때면. 그래서 후회가 마음에 더 깊이 들어찰 때면.
우리는 꼭 태어난 이유를 증명하면서 살아야 할까.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살아가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그 이유를 찾는 사람들은 대단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들이 너무 대단하지만, 내가 그렇지 못하다고 해서 주눅 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우연이면 충분하다.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걸 내가 굳이 알 필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