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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부 Oct 11. 2022

콘센트를 차지하고 앉아서

배터리를 충전하는 날들


콘센트를 차지하고 앉아서



피가 파랗다면 덜 슬픈 사람이 될까

눈물에 색이 있으면 외롭지 않을까

향기가 눈에 보이면 지워지는 흔적이 될까


손톱을 물어뜯는 것은

언제나 정도를 지나쳐버리는 일

쇠 맛이 사라질 때까지

손끝을 쪽쪽 빨아버리고 나면

살아가는 일이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연체동물은 피가 파랗다는데

피가 파란색이면 왠지 덜 슬플 것 같아

빨간색만 아니라면 외롭지 않을 것 같아서


손 거스러미 사이로 굵은 바늘을 꽂고

배터리를 충전하는 날들

하얀 피를 수혈 받는 동안엔

얼굴 없는 사람들의 연락을 기다렸다

마음이 불안하지 않아서 괜찮았던

모든 희생과 어떤 견딤과 깊은 방어들


나는 애정을 갈구하는 충견처럼

하나 남은 콘센트 앞을 지킨다


숫자가 줄어들고 붉은 기운이 짙어 지면

불안한 사람들이 외로워지는 순간이 찾아오겠지

파란 피의 생물을 씹으며

더 슬픈 것과 덜 슬픈 것은 없다는 것을

더 외로운 것과 덜 외로운 것은 없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 주렴


충전된 중심에 독獨을 품고

주인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다






산소를 운반하는 물질에 따라 혈액의 색이 바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가끔은 살아 있어서 외롭다는 생각을 했고, 내 피가 다른 색이라면 덜 외로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다. 카페에 가면 콘센트가 있는 자리를 찾았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연락올 곳이 없었지만, 나는 “배터리가 없으면 불안해서”라고 대답했다. 불안해서였는지 외로워서였는지 모르겠다. 불안해서 외로운 건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 휴대폰을 충전하는 내내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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