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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부 Oct 04. 2022

현관 앞에서

당신의 뒤통수를 본 날에는


현관 앞에서 당신의 뒤통수를 본 날에는



해마다 운동화를 샀다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오면

겁에 떨던 하루도 

신발과 함께 벗어버리고 싶었지만

털썩 바닥에 주저앉는 일처럼

습관이 되지는 않았다


매일 아침 집을 나설 때

어떤 신발을 신을지 고민할 수 있었던 건

늘 누군가가 나보다 먼저 

새벽빛을 찾아 눈을 떴기 때문이다


불도 켜지 못하는 시간

새벽과 아침 사이에서 초침이 눈을 비빌 때

쪼르르 달려간 현관에서 쭈그리고 앉아

구겨진 신발 뒤창을 펴

신발장에 고이 넣어주던 사람


무슨 생각을 했을까

더 이상 자라지 않는 사내가

한 켤레 두 켤레

속 빈 숫자를 늘려가고 있을 때

그 안에

퀘퀘한 눈물을 덜고 마른 공기를 채우며

괜찮다 괜찮다 하던

당신은


쓸쓸한 표정을 감추고 뒤통수로만 남았는데


나는

당신보다 늦게 눕고 일찍 일어나는 꿈을 꾼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꿈을 꾼다

앞에 서고 마지막이 되어주는 일을 거기에서 하면


그때는 웃음을 보려나

이번엔 내가

괜찮아 괜찮아 

말할 수 있는 하루쯤은 어딘가






엄마의 앞에 서 있을 때도, 나는 늘 뒤통수를 보는 느낌이다. 언제나 무언가를 해야 하는 사람, 나보다 먼저 일어나야 하는 사람.


할머니는 나보다 걸음이 한참이나 더 느린데 역시 늘 나보다 앞서서 걷는 삶을 산다. 같이 살 때, 알람 시계가 있는데도 늘 할머니에게 깨워 달라는 부탁을 했다. 늦게 잠들어 내가 늦잠을 잔 날에도 할머니한테 짜증을 냈다. 


“할머니, 나 왜 안 깨웠어.”

“깨웠지. 근데 네가 또 자서 괜찮은 줄 알았지.”


1초의 흐트러짐도 없는 핸드폰 알람보다 엄마랑 할머니에게 깨워달라고 말하는 게 더 안심이 됐다. 당신들보다 먼저 일어나면, 그리고 더 늦게 누우면 나도 누군가에게 믿음을 줄 수 있을까. 엄마와 엄마의 엄마에게 내가 먼저 ‘괜찮아 괜찮아’ 말하는 어른은 언제쯤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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