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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부 Mar 12. 2022

엄마는 돈이 없다

내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게 있다면 잘 사용하고 싶으니까

엄마는 돈이 없다



- 엄마 나 용돈 좀

- 잠깐만 기다려 봐 방세 받아서 줄게

   어제 건넛방에 들어온 젊은 삼촌이

   아직도 자고 있네


우리 집은 테트리스

좁은 집구석을 가로세로 잘도 나눴다

첫째 방은 자꾸 형이라고 부르라는 기러기 아저씨

그 옆엔 빵 봉지를 가판대 신문처럼

쌓아두는 누나가

그리고 어제 들어온 잠꾸러기 삼촌은

아직까지 자고 있다


- 엄마, 엄마는 돈 없어?

- 엄마가 돈이 어디 있어, 잠깐만 기다려봐.

   여기 어제 첫째 방 아저씨한테 받은 돈,

   오만 원이면 되지?


유리잔에 담긴 아메리카노 위

한 달 내내 정장 두벌 돌려 입는

아저씨 얼굴이 둥둥 떠 있다

정말 싫어, 엄마 돈 쓰는데 꼭 아저씨 돈 쓰는 기분

아니지, 이젠 내 돈인데 왜 이렇게 찜찜해

유리잔 밑에는 아무도 모를

하숙집 아들만 아는 고민이 흥건하다


집에 가는 길

지하철역 구석에서 애기 손을 꼭 잡고

김밥 파는 여자

은박지에 싸인 일용할 양식

내일이 없다는 점이 꼭 나랑 닮아서

주머니 속 꼬깃꼬깃한 천 원 짜리를 꺼낸다


- 아줌마, 김밥 두 줄만 주세요

검은 봉지에 반들반들 빛나는 김밥이 담긴다

그 옆으로 딸애가 서툰 고갯짓을 할 때

- 아니야, 이건 아빠가 사는 거야

첫째 방 기러기 아저씨의 돈을 빳빳하게 편다


- 엄마, 엄마 돈은 없어?

- 엄마가 돈이 어딨어 다 돌고 도는 돈이지


그렇네

돈 많은 세상에 엄마 돈은 없었네


은박지 사이 참기름 냄새

오후의 바람 타고 마당에 퍼진다





어릴 적에 엄마가 길거리에서 사오는 물건들이 싫었다. 한눈에 봐도 불량한 물건들. 떨이로 사온 음식들. 지하철 플랫폼에서 파는 하얀 도라지 같은 것들. 굳이 필요하지 않은 걸 엄마는 도대체 왜 사오는 거야? 하고 물으면, 엄마는 "알겠어. 다음엔 안 사올게" 하면서도 이 말을 까먹은 듯이 늘 새로운 것들을 사오곤 했다. 그런 싸구려들은 어쩌면 엄마가 살 수 있는 가장 당당한 소비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요즘에서야 한다. 거리에서 나를 붙잡는 호소들을 그냥 지나쳐가면서, '이건 허황된 연민이야'라고 스스로를 질타하거나 '천 원 이천 원도 돈이야'라고 바깥으로 향하는 시선을 거두면서.


물론 돈은 다른 얘기겠지만, 세상에 완벽하게 내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무엇이라도 있을까 생각해본다. 내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게 혹시라도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지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다. 내 것을 챙기느라 여념이 없는, 자꾸만 욕심이 커져가는 나에게 말해주고 싶은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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