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체부 Oct 11. 2022

지하철이 없는 동네에 삽니다

어딘가에 시간 맞춰 가야하는 삶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면




오래된 친구를 만나고 집에 오는 길. 낯선 버스를 탔어. 지하철이 빠르긴 해도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으면 버스를 타고 싶어지잖아. 10키로도 안 되는 거리인데, 한 시간이 넘게 걸려. 골목 구석구석을 샅샅이 돌아오는 버스였어. 버스전용차선도 없는 좁은 길. '이렇게 커다란 버스가 돌아다녀도 되는 걸까' 생각이 드는 길이었는데, 피곤한 얼굴을 한 사람들이 쉴틈없이 타고 내렸어. 


마치 어렸을 적, 학교 다닐 때 친구들과 함께 타던 버스 같았어. 곰곰 되짚어보면 지하철은 성인이 되고 나서야 자주 탔던 것 같아. 어릴 때는 지하철이 없는 동네에 살았으니까. 


이제 내가 사는 동네에는 대부분 걸어다닐 수 있는 거리에 지하철 역이 있어. 서울에서는 그런 곳이 아니면, 사람들이 이사를 가지 않으려고 하니까. 어딘가에 시간 맞춰 가야하는 삶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면, 나는 이곳을 떠날 수 없을 것 같아. 싫다면서도 계속 집착하게 되는 것만 같아. 





엄마가 반찬을 가지러 집에 오라고 할 때마다 "다음에"라고 말했던 건, 지하철역이 없어 뱅뱅 돌아가는 버스를 타야 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커다란 버스가 지나가기에는 너무 비좁은 그 골목길이 싫어서였던 것 같아. 나에겐 아무 것도 아닌 버스 계단이 누군가에겐 오르고 내리기 어려운 높이기도 하겠지. 좁은 길에서 커브를 돌면 더 많이 흔들릴 거야. 십년 후에도, 이십 년 후에도 지하철이 생기지 않을 텐데... 이 동네에서 엄마는 얼마나 더 살아야 할까. 내가 엄마를 데리고 나올 수 있을까? 엄마 집에 갈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들어. 어떤 걱정은 하기 싫어도 계속 하게 되잖아. 해결책을 하나도 내놓지 못하면서. 상대를 위해 내놓는 건 하나도 없지만, 정작 내 마음은 온통 비어가는 일. 마음이 자꾸 가난해지는 일이야. 

매거진의 이전글 안목 없는 사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