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에 시간 맞춰 가야하는 삶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면
오래된 친구를 만나고 집에 오는 길. 낯선 버스를 탔어. 지하철이 빠르긴 해도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으면 버스를 타고 싶어지잖아. 10키로도 안 되는 거리인데, 한 시간이 넘게 걸려. 골목 구석구석을 샅샅이 돌아오는 버스였어. 버스전용차선도 없는 좁은 길. '이렇게 커다란 버스가 돌아다녀도 되는 걸까' 생각이 드는 길이었는데, 피곤한 얼굴을 한 사람들이 쉴틈없이 타고 내렸어.
마치 어렸을 적, 학교 다닐 때 친구들과 함께 타던 버스 같았어. 곰곰 되짚어보면 지하철은 성인이 되고 나서야 자주 탔던 것 같아. 어릴 때는 지하철이 없는 동네에 살았으니까.
이제 내가 사는 동네에는 대부분 걸어다닐 수 있는 거리에 지하철 역이 있어. 서울에서는 그런 곳이 아니면, 사람들이 이사를 가지 않으려고 하니까. 어딘가에 시간 맞춰 가야하는 삶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면, 나는 이곳을 떠날 수 없을 것 같아. 싫다면서도 계속 집착하게 되는 것만 같아.
엄마가 반찬을 가지러 집에 오라고 할 때마다 "다음에"라고 말했던 건, 지하철역이 없어 뱅뱅 돌아가는 버스를 타야 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커다란 버스가 지나가기에는 너무 비좁은 그 골목길이 싫어서였던 것 같아. 나에겐 아무 것도 아닌 버스 계단이 누군가에겐 오르고 내리기 어려운 높이기도 하겠지. 좁은 길에서 커브를 돌면 더 많이 흔들릴 거야. 십년 후에도, 이십 년 후에도 지하철이 생기지 않을 텐데... 이 동네에서 엄마는 얼마나 더 살아야 할까. 내가 엄마를 데리고 나올 수 있을까? 엄마 집에 갈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들어. 어떤 걱정은 하기 싫어도 계속 하게 되잖아. 해결책을 하나도 내놓지 못하면서. 상대를 위해 내놓는 건 하나도 없지만, 정작 내 마음은 온통 비어가는 일. 마음이 자꾸 가난해지는 일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