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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부 Oct 30. 2022

안목 없는 사람

더 좋은 것을 좋아할 기회가 없었던 게 아닐까


나는 내가 ‘더’ 좋은 것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일까 봐 걱정될 때가 있다. 


친구들과 얘기를 나눌 때도 “나는 다 좋아”, “다 괜찮아”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회사에서 회의를 하거나 어떤 안건에 대해 투표해야 하는 경우에도 조금 더 끌리는 게 있긴 하지만, 꼭 그게 아니라도 괜찮은 경우가 많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남들보다 섬세하지 못한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A와 B안이 있다면 둘 중 아무거나 돼도 큰 상관이 없다고 (속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솔직하게 말하면 별볼일 없는, 고민 없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 쓸데 없는 이유들을 그럴 듯하게 포장해서 덧붙인 적이 많았다.


먹고, 입고, 자고, 보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늘 ‘이 정도면 됐지’, ‘이거면 괜찮지’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무던함이 좋은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 앞에서 ‘이게 정말 괜찮은 건지’ 궁금해졌다.


기술이 없는 나는, 문과생의 필살기는 결국 ‘안목’이라고 생각했다. 물질의 풍요 속에서 사는 시대에, 내가 좀 더 쓸모있게 여겨질 분야. 내가 조금 더 경쟁력을 가지고 소모될 수 있는 분야 역시 그런 안목을 기반으로 하는 게 아닐까? 지금 내가 책을 만드는 일도 아마 마찬가지겠지. 억지로 기준을 높이고 까탈스러워지는 것과 별개로, 안목을 갖춘 사람이면 좋겠는데… 쉽지가 않다.


내 무던함의 이유가 조금씩 부족한 삶 때문이었다고 생각하면 조금 씁쓸하다. 어릴 때부터 맛있는 음식보다 양이 많은 게 중요했으니까. 한번 해놓고 오래 먹을 수 있는 게 중요했다. 집에서는 알이 굵은 과일을 먹지 못했다. 친구집이나 교회에서 튼튼한 상자에 포장돼 있는 과일을 먹고서 ‘과일은 비쌀 수록 맛있구나’ 생각했다. 물론 지금도 혼자서는 비싼 과일은 못 사지만. 마트에서도 알이 작은 사과만 봉지에 주워담는다. 


사람은 자기가 경험해본 것만 상상할 수 있다고 했지?


까탈스러운 사람을 까탈스럽다고 욕하면서도 부러워했던 것 같다. 그게 진짜 같을 때. 불만을 위한 불만 말고, 진짜 마음 같을 때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나?


조금은 빡빡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좋은 안목을 갖는 방법을 찾고 싶다.




가끔은 걱정이 되지.

"야 나 이거 안 좋아해"하고 말했던 게, 

좋아하지 않는 게 아니라

몰라서 못 좋아했던 걸지도 모르니까. 

좋아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일지도 몰라서. 

러버뷰 객실. 1등급 소고기. 브랜드 옷. 모노레일. 

몸이 힘들 때는 택시를 타면

얼마나 편해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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