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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부 Nov 14. 2022

나는 든든해요

나는 당신이 버겁고 든든합니다






너, 내가 우리 사장님 욕을 얼마나 많이 한 줄 알지?


아주 나쁜 쪽으로는 잔머리 일등이라고. 매일 쓸데 없는 일에 큰소리 내고. 괜히 불러서 한두 시간씩 자기를 얘기 하고. 그래서 덕분에 나는 맨날 야근 하고. 코로나가 그렇게 심한데도 재택근무는 단 하루도 안 한 거 있지? 나한테 화를 낸 적은 없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화를 내는 모습을 보면 나까지 괜히 주눅이 들어서 다음에는 내 차례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하고. 그런데 미워도 아주 끝까지 미워할 수 없는 건 가끔씩 따뜻한 말을 해줘.





친구들이 보면 아마 "야 너 그거 가스라이팅 당하는 거야"하고 웃을지도 모르겠다. 사장님들은 아주 마음 속에 여우가 백 마리쯤은 있으니까. 나 같은 사람은 수십, 수백 명도 거쳤을 테니까. 빈말인 거 다 아는데. 근데 어른한테 든든하다는 말을 처음 들어 보는 거야. 그것도 이 사람한테만. 아니, 학창시절 선생님들한테 이런 말을 들었던 거 같기도 해. 그런데 그때는 그게 그렇게 힘이 되는 말인 줄 몰랐던 거야. 든든하다는 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그 말 뜻을 몰랐어. 그때는 든든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못했었나 봐. 나는 늘 기댈 줄만 알았지. 그래서 나이를 먹고 나서는 내가 누군가에게 그렇게 믿음직한 사람은 아니라는 게 늘 콤플렉스였거든. 성실이야 했지만, 책임감이야 있었지만, 누군가가 기댈만큼 든든한 사람이 되지 못한다는 걸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었어.


엄마에게는 든든하다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생각해보니 엄마에게는 한 번도 들어본적이 없는 말이었네. 맞아, 한 번도 든든한 사람인 적은 없었을 거야. 늘 버거웠거든. 엄마는 내가. 나에게는 엄마가. 서로를 버거워하는 사람들에게 서로는 든든한 존재가 될 수 없구나. 사장님은 내가 버겁지 않으니까, 열심히 하는 내 모습이 든든했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도, 어쨌든. 어쨌든 고마웠다. 고맙고 뭉클했어.


상대가 버거워도, 그다지 믿음직스럽지 않더라도, "든든하다"고 말하는 게 어쩌면 너무 미안해서, 믿고 의지하는 게 너무 미안하게 느껴져서 그런 말을 할 수 없는 사이라도, 한 번쯤은 "든든하다"는 말을 들어야 할 것 같아. 막상 그 말을 들으면 '왜 나에게 마음의 짐을 지우냐고' 속으로 원망할지도 모르지만. 그리고 나도 그 말을 해줘야만 할 것 같아. 든든했다고. 든든하다고. 사라지면 너무 막막할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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