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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운서 Sep 10. 2020

3주 차. 자기소개 잘하기(1)

"저는 MBC입니다."


3-1.


저는 'MBC'입니다.




"저는 2남 1녀 중 장남으로 따듯하신 부모님 덕분에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  
 
차라리 농담이었으면 좋겠지만 자기소개를 하라고 하면 아직도 이렇게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제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때는 무려 2020년인데도 말이죠...! 근데 더 큰 문제는 차라리 이렇게라도 하면 다행인 사람들도 많다는 겁니다. 면접 컨설팅하면서 보면 "저는 이번에 ㅇㅇ회사의 ㅇㅇ직무에 지원한 ㅇㅇㅇ입니다."로만 자기소개가 그냥 끝나는 경우가 정말 흔해요. 자기소개인데 자기가 누구인지 전혀 말해주지 않는 거죠. 
 
어려서부터 자기를 소개하는 일을 적지 않게 했을텐데 우리는 왜 여전히 자기소개가 쉽지 않을까요? 근데 문제는 저도 그래요. 어떤 면접을 앞두고 있다든지 해서 따로 준비가 되어 있으면 몰라도 갑자기 "자기소개 좀 부탁드려요."라는 말을 들으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막막해지죠. 또 아직 우리 사회 분위기 상 괜히 내가 누군지 내 입으로 직접  말하는 게 좀 민망하기도 하고요 
 
그렇다면 자기소개,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크게 세 가지 원칙으로 제시합니다. 첫째, '나를 각인시킬 키워드가 있어야 한다.', 둘째, '상대가 알고 싶은 나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셋째, '자기소개 역시 논리적이어야 한다.''이렇게 말이죠.  
 
"안녕하십니까, 저는 MBC입니다. MBC하면 아마 다들 문화방송을 떠올리실텐데요. 사실 MBC는 제 어린 시절부터의 별명입니다.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계속 학생 아나운서를 해왔는데요. MBC 아나운서처럼 방송을 잘해서 별명이 MBC였다면! 참 좋았겠지만... 제 별명인 MBC는 사실 'Margarin, Butter, Cheese'의 약자입니다. 제가 방송하는 목소리가 '마가린, 버터, 치즈'를 합친 만큼 느끼하다고 붙은 별명이었죠. 
 
그런데 저는 MBC라는 말을 듣고 기분 나빠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래, 말이 씨가 된다는데 너희가 나를 MBC라고 부르니까 나는 나중에 꼭 MBC에서 방송하는 아나운서가 될 거야."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꿈꿀 줄 아는 학생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15년 가까이 지났지만 아나운서라는 저의 꿈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그리고 그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 국어국문학이라는 전공선택부터 시작해 스피치 학회 활동을 비롯한 다양한 대외활동에 학생 아나운서/MC 또한 계속해왔습니다. 
 
저는 여전히 'MBC'라고 불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마가린, 버터, 치즈'의 MBC가 아닌 'MBC 아나운서 안광훈'이고 싶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나운서를 준비하던 시절의 제 자기소개였습니다. 사실은 MBC 시험을 볼 때에만 쓸 수 있는 자기소개이기도 하고, 결국 저는 MBC 아나운서가 아니라 CBS 아나운서가 됐지만 (그래도 인생의 첫 방송은 MBC 굿모닝FM 전현무입니다 코너출연이었네요.) 제가 앞에서 말한 자기소개의 세 가지 원칙이 그래도 잘 드러나 있다고 생각해서 부끄럽지만 소개해드려요.  
 
먼저 첫 번째 원칙이었던 '키워드'. 제 자기소개에는 'MBC'라는 키워드가 들어가 있었죠. 이게 정말 효과적인 키워드라는 생각을 지금도 하는 게 사실 제 이름인 '안광훈'이 발음하기도 어렵고, 누가 들었을 때 한 번에 딱 기억할 만한 이름도 아니잖아요. 근데 제가 어디 가서 MBC 얘기를 하면 다들 제 이름은 기억 못 해도 "아! 그 MBC!!!" 이렇게는 기억을 하시더라고요. 이게 바로 키워드의 힘입니다. 어쨌든 자기소개는 나를 모르는 사람에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리려는 거잖아요. 그럴 때 나라는 사람을 각인시키기 가장 쉬운 게 키워드라는 거죠. 
 
요즘엔 사실 "키워드로 자기소개하는 건 트렌드가 지났다."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세요. 음, 근데 저는 별로 동의하지 않습니다. 단적인 예가요. 유명한 아이돌들도 여전히 자기소개를 할 때 키워드로 자기를 소개하잖아요. "트와이스의 흥부(흥 많은 두부) 다현입니다." 이렇게요. 키워드는 분명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를 가장 효율적으로 보여줄 수 있습니다. 다만 자신에 대해 먼저 충분히 파악한 후에 그걸 잘 나타내 주는 키워드를 정해야지, 키워드를 먼저 정해놓고는 거기에 집착해서 나를 키워드에 맞추면 안 됩니다. 그거 하나만 조심하면 돼요.  
 
두 번째는 "상대가 알고 싶은 나의 모습을 보여준다.". 자기소개를 할 때의 상황이 있죠. 취업 면접부터 소개팅, 회식 자리까지 다양할 겁니다. 그 모든 상황에서 똑같은 자기소개를 할 수는 없어요. 위에 소개해드린 제 자기소개는 방송국 중 MBC에서만 쓸 수 있었겠죠. 제가 저 자기소개를 CBS에서 했으면 과연 합격할 수 있었을까요...? 또는 제가 소개팅에서 자기소개를 저렇게 하고 있다면요? 
 
자기소개란 물론 나를 알려주는 거지만 자기소개를 해야 하는 그 상황 안에서 상대가 알고 싶은 내 모습이 있다는 거죠. 취업 면접에서는 과연 내가 이 회사에 어울리는 사람인지를 보고 싶을 거고요. 소개팅에서는 내가 어떤 매력을 갖고 있는지를, 또 회식 자리에서는 그 모임의 목적이나 특성에 따라 내게서 보고 싶은 게 달라질 겁니다.  
 
그렇다고 거기에 맞추겠다고 무리해서 내게 없는 모습까지 보여줄 필요는 없어요. 우리에게 있는 모습 중에서 조금 더 그 상황에서 어필할 수 있는 부분들을 더 보여주면 되는 거죠. 상황에 따라 조금 다를 수는 있겠지만 내가 어디에서 인턴과 실습을 했다는 사실이 취업 면접에서는 굉장히 중요하겠죠? 하지만 소개팅에서는 꼭 할 필요가 있는 말이 아니잖아요. 반면에 내가 기념일에 이벤트하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는 건 소개팅에서는 괜찮겠지만 취업 면접에서는 할 필요가 없는 말이겠죠.  
 
세 번째로 "자기소개 역시 논리적이어야 한다"는 말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얘기했을 때 그거에 대한 논거 역시 함께 제시해야 한다는 겁니다. 위의 제 자기소개에서는 먼저 제가 긍정적인 성격이라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마가린, 버터, 치즈를 합친 것처럼 느끼한 목소리'라는 말을 들었어도 기분 나빠하지 않고 오히려 꿈을 꿨다는 근거를 들었죠. 또 아나운서 꿈만 계속 꿔왔고 준비해왔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전공선택부터 제가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 해왔던 것들을 간략히 말했고요.  
 
당연히 자기소개는 나에 대한 소개이기에 주관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 근거도 온전히 객관적이 되기는 쉽지 않아요. 하지만 그렇다고 "저는 이런이런 사람입니다."라는 '주장'만 나열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고 그 면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사례나 근거들을 꼭 같이 덧붙여주세요. 남들이 나에 대해 해준 말들도 좋은 논거가 됩니다.  
 
충분히 매력 넘치고 많은 강점을 가지고 있는 여러분이라는 '원료'를 갖고 제가 말씀드린 세 가지 원칙으로 풀어낸다면 꽤나 근사한, 그리고 기억에 남는 자기소개가 될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자칭꼰대교수의 강의 노트 3-1>


#자기소개의 세 가지 원칙 
 
1) 나를 각인시킬 키워드가 있어야 한다.   
2) 상대가 알고 싶은 나의 모습을 보여준다. 
3) 자기소개 역시 논리적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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