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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운서 Sep 12. 2020

자칭꼰대교수와 특'별난' 제자들의 이야기 셋.

강의실에 해리 포터가 등장하다!!!


때는 강의 2주 차. 저희 학생들의 자기소개 스피치 평가 시간이었죠. 1주 차 때 오리엔테이션하면서 제 수업이 굉장히 재미있는 수업이고 또 빡세지 않은 수업이라고 열심히 강조했었는데요. 그러고는 첫 수업이 다 끝내갈 때쯤 반전으로 "근데...저희 다음 주에 자기소개 스피치로 첫 평가 봅니다."라며 학생들을 패닉에 빠뜨리며 즐거워했던 저였습니다. 
 
"가르쳐준 것도 아무것도 없으면서 평가를 본다고...?!"라고 학생들은 생각했겠지만 사실 저 그 정도로 양심 없는 사람은 아니어서요. 자기소개 스피치를 2주 차에 평가하기로 한 것은 학생들 각각의 현재 스피치 실력이 궁금했고 또 순수하게 자기소개를 통해 제 학생들을 알고 싶은 목적에서였습니다. 그래서 평가 기준은 딱 하나, '스피치 시간'이었어요. 3분이라는 기준 시간을 주고 플러스 마이너스 30초까지 괜찮다고 했죠. 
(이러니 대부분의 학생들이 2분 30초에 맞춰 스피치를 준비했다는 것은 안 비밀) 
 
첫날부터 과제를 줘놓고는 은근히 즐거워했지만(?!) 막상 평가 시간이 다가오자 살짝 긴장이 됐습니다. 저희 과 특성상, 거기에 졸업 학년이었던 저의 학생들 특성상 원해서 듣는 수업도 아니고, 성적이 크게 중요하지도 않았기에 과연 준비를 잘 해올까 싶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나와서 2분 30초 동안 아무 말도 안 하거나 또는 막 아무 말이나 하다가 들어가면 어떡하지?"라는 걱정까지 했었죠. 
 
하지만 기우였습니다. 아니, 기우를 넘어서 제가 우리 학생들에게 푹 빠지게 된 계기가 된 날이었죠. 성적에 들어가지도 않고, 원해서 듣는 수업도 아니었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이 PPT까지 준비해서는 정말 멋지게 자기소개를 해내더라고요. 학력에 대한 선입견이 참 없는 편이라고 스스로 생각했었는데 기대를 안 했던 것 자체가 선입견이 제게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 것 같아서 반성도 많이 했습니다.  
 
50명이 넘는 친구들이 각자의 매력을 참 다양한 방법과 말들로 잘 소개해줬는데요. 이 글을 쓰는 지금의 제게는 그중에서도 특히 두 친구가 조금 더 기억에 남습니다. 
 
한 친구는 등장은 평범했습니다. 아니, 잘 기억해보니 등장부터 비범했던 것 같아요. 여러 소품을 챙겨서 나가는 모습을 봤으니까요. 무슨 소품인가 했는데...자기가 해리 포터 시리즈를 굉장히 좋아한다며 3분 가까운 스피치를 하면서 해리포터 안경을 쓰고, 머플러를 두르고, 또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직접 사왔다며 버터맥주1)잔까지 보여줬습니다.  
 
조금 엉뚱하긴 했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정말 열심히 준비해와서 열정적으로 얘기하고 있으니까 평가를 해야 하는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펜을 내려놓고 푹 빠져서 이야기를 듣게 되더라고요. 해리포터에 대한 학생의 애정이 고스란히 스피치를 통해 전달돼서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또 다른 친구는 굉장히 용감하게도 자기의 상처를 솔직하게 드러내 준 친구였어요. 어렸을 때 못 생겨서 자존감이 굉장히 낮았었다고, 그래서인지 친구들에게 은근히 따돌림도 당했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다가 뷰티 쪽에 관심을 갖게 됐고 화장 기술을 배우고 하면서 본인 외모를 가꾸다 보니 얼굴이 예뻐진 건 기본이고 어느새 자존감 또한 무척 높아졌다고. 그래서 이제는 그런 자기가 메이크업을 통해 자신의 외모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다른 누군가의 자존감을 높여주고 싶다는 꿈까지 말해줬습니다.  
 
앞의 스피치는 무척이나 아빠 미소(?!)를 띠면서 들었고, 뒤의 스피치는 가슴 뭉클하게 들었는데요. 분위기는 참 달랐지만 저 두 스피치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진심'이 들어가 있는 스피치였다는 거예요. 해리포터 시리즈를 좋아하는 그 애정과, 자신의 아팠던 과거와 그걸 딛고 일어나서 꾸게 된 꿈이라는 진심을 이야기했기에 그게 청중들에게, 심지어 단순히 듣는 것을 넘어서 평가를 해야 했던 저에게까지 와서 닿은 거죠.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저는 말을 잘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에 대해 계속해서 말씀드릴 거예요. 하지만 가장 훌륭한 스피치는 위에서도 소개했 듯 진심이 담긴 스피치라는 것, 그 진심은 반드시 가서 닿는다는 것을 기억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1)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마법사들이 가장 대중적으로 마시는 음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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