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나운서 Feb 14. 2021

'후회'와 '미련' 중 그래도 '후회'가 낫더라.

자칭꼰대교수와 특'별난' 제자들의 이야기 일곱.



살다 보면 아주 가끔씩 그런 날 있지 않나요? 왠지 오늘 누군가를 만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정말로 그 누군가를 우연히 마주치는 날이요.

하루는 강의를 마치고 할 일이 많아서 퇴근을 꽤 늦게 한 날이 있었습니다. 집에 오는 버스를 타러 가는데 우리 과 학생들의 시간표를 자세히 알고 있던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왠지 제자를 마주칠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어요. 버스를 탔는데 남아 있는 자리가 딱 하나 있었고 앉고 보니까 옆에는 제가 앉은 줄도 모른 채 열심히 창 밖을 보던 저의 제자 C가 있었죠.

이 나이(?!)에도 장난기가 좀 있는 편이라 일부러 말을 걸지 않고 C가 저의 존재를 눈치챌 때까지 가만히 있었습니다. 시간이 좀 지나서 "이러다가 도착할 때까지 모르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슬그머니 들 때쯤 옆에 앉은 사람이 저인 걸 알고 소스라치게 놀랐던 C의 모습이란. 한편으로는 조용히 음악 들으면서 집에 가고 싶었는데 옆에 제가 앉아서 엄청 부담스러워하면 어떡하나 싶었는데 다행히도 반가워해주고 오히려 이런저런 질문들을 먼저 던져줘서 자연스레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었습니다.

사실 C는 제 수업을 가장 모범적으로 듣던 학생 중 한 명이었어요. 스피치 능력도 뛰어났고 항상 수업 후에는 제가 있는 강단까지 와서 "안녕히 계세요!"라고 인사까지 잘해주는 친구였죠. 여러 모로 다재다능하기도 해서 이 수업이 끝나면 졸업을 하는 이 친구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궁금했던 차였어요.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뷰티매니저과 학생들이기에 보통 헤어, 메이크업, 네일, 다이어트 관리 이런 분야로 많이 진출을 하거든요. 그런데 우리네 전공들도 많이 그렇듯 전공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는 친구들도 많았어요. 왠지 C도 그럴 것 같았습니다.

"모델을 하고 싶어요."
C의 답을 듣자마자 바로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습니다. 사진도 참 잘 찍는(정확히는 찍히는) 친구라 무척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전공과도 크게 상관없고, 쉬운 길도 아니기에 고민을 하는 것 같았죠.

C에게 저는 말했습니다. 20대를 지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나이지만 20대에는 후회와 미련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그래도 후회가 나은 것 같다고 말이죠.

저는 '미련'은 하지 않아서 갖게 되는 감정, '후회'는 해보고 나서 갖게 되는 감정이라고 보통 정의를 많이 하는데요. 제 20대를 돌아봐도 그렇더라고요. 하고 나서 후회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과거는 보통 미화가 되고는 하니까 그렇기도 할 테고, 하다가 잘 안 됐으면 그게 엄청난 손해나 손실이 되지 않는 한 배우는 시간이었다고, 경험으로 여겨도 되고요. 해봤는데 이래저래 힘들거나 안 맞으면 그만둬도 되니까요. 그런데 하지 않은 일들은, 그 시기를 놓쳐버린 일들은 떠올리면 여전히 마음속 깊이 아쉬움이 있는 걸 보며 후회보다는 미련이 그래도 늘 낫다는 생각을 하고는 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수업 시간에도 참 많이 했던 것 같아요. 학과장님은 싫어하시겠지만... 어차피 일은 평생 해야 하니까, 또 2년제를 다녀서 일찍 졸업하는 너희는 다른 애들보다 2년이라는 시간이 더 있는 거기도 하니까 취직보다는 하고 싶은 것들을 해보는 데 20대를 좀 쓰라고 말이죠. 물론 정말 간절히 하고 싶은 게 '일'이라면 당연히 일을 하는 것도 좋고요.

첫 제자들이 졸업한 지 일 년이 딱 지나고 있습니다. 보면 전공을 살려서 일을 하고 있는 친구들은 반 정도밖에 안 되는 것 같아요. 뮤지컬 배우를 꿈꾸는 친구도 있고, 쇼호스트를 꿈꾸는 친구도 있고, 공부를 계속하고 싶어 하는 친구도, 출판사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친구도, 사무직으로 일하고 싶어 하는 친구도, 그리고 색다른 무언가들을 계속하면서 자신의 길을 찾는 친구까지 자신들의 20대를 다양하게 살아가는 걸 보고 있습니다.

아, C는 어떻게 됐냐고요? 저는 모델이라는 꿈을 이뤘다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패션쇼 런웨이에 서는 모델은 아니지만 의류 쇼핑몰을 운영하면서 직접 모델까지 하고 있더라고요. 아직 나이도 어리니까 언젠가는 런웨이에서 그녀를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해보고 갖는 후회와 안 해보고 갖는 미련 중 그래도 후회가 낫다. 그러니 일단 해보자." 이 말이 비단 저의 제자들, 그리고 20대에게만 해당하는 말은 아닐 거라 생각해보며 이 글을 마무리해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말, 하나만 달라져도 많은 게 달라진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