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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운서 Mar 08. 2021

'믿는다'는 말에 대하여

 귀멸의 칼날 : 무한 열차 편을 보고



"믿는다"는 말을 자주 들어왔다. 그래서 들을 때 큰 감흥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어린 때였지만 "왜 남편들이 가장 힘이 나는 말이 사랑한다는 말이 아니라 믿는다는 말일까?"라는 의문을 깊게 가지기도 했었으니.

아나운서를 준비할 때는 누군가 나한테 "믿어."라고 말하는 게 배은망덕하게도 싫었다. 겉으로는 고맙다고 하면서도 속으로는 "당신이 뭘 알아, 당신이 아나운서 되는 게 얼마나 좁고 힘든지 제대로 알아? 그리고 내 부족함과 한계도 알아?"라고 반박했었다. 쉽게 말해준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바보였다.

"살면서 누가 제게 믿는다고 해준 게 처음이에요. 제게는 터닝포인트가 될 것 같아요."
'믿는다'는 말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한 건 한 제자 덕분이었다. 믿는다는 말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쉽게, 아무 생각 없이 뱉을 만한 표현이 아니라는 걸 그때에서야 제대로 알게 됐다.

사회생활을 해가고, 전처럼 많은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맺고 살아가지 못하면서부터 나 역시 누군가에게 '믿는다'는 말을 드는 횟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 것 같다. 명확하게 언제, 어떤 상황에서, 무슨 말을 들었는지 떠오르는 것도 없을 정도다.

"믿는다"는 말에는 분명 무게가 있다. 그 말을 뱉은 사람도, 그 말을 들은 사람도 져야 할 무게가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믿는 자는 영생을 얻는다고 하셨다. 그 진리를 알면서도 믿는다는 뜻의 '아멘'을 입 밖으로 내기까지의 과정이 크리스천들에게도 참 어렵지 않은가.

"믿는다"는 말에는 힘이 있다. 기독교적인 구원이 아닐지라도, 그 말은 분명 누군가를 구원해줄 힘이 있는 말이다.

믿는다는 말을 들었다면, 그렇기에 그것에 보답해야 한다. 될 수 있을지 없을지 그런 '시답잖은' 소리는 하지 않고, 오직 그 믿음에 부합하는 삶을 사는 것에 집중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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