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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운서 May 06. 2022

미안하다. 고맙다.

일상의 언어처럼 보이지만 다시는 못할 수도 있는 말. 

가정의 달이기도 하고. 제목만 보면 너무나 뻔한 글처럼 느껴질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미안하다는 말이나 고맙다는 말을 더 자주 해라’, 특히 ‘늦기 전에 부모님한테 더 잘 표현해라.’ 이런 거겠지. 그런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나는 ‘감히’ 들었어야 하는 입장이니까.       


<우리 이혼했어요 2>를 보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출연자 둘은 모르고 있지만 MC부터 시청자인 나까지 “아직 감정 엄청 남아 있네.”, “지금 저거 마음 있어서 저러네.” 이렇게 반응하는 순간들. 누가 봐도 그렇게밖에 볼 수 없는 장면들.      


그렇게 보다가 나 자신에게로 시선을 돌려 봤다. 누가 봐도 그렇게 보는 저 순간의 주인공이 나라면? 모두가 내게 그렇다 해도 내 앞에 있는 이 사람이 나에게 확실히 “너한테 마음 남아 있다고 이 바보야!”라고 하지 않는 한 나는 믿지 않을 것 같다. 정확하게 표현해주지 않으면 나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아무리 적은 확률이라고 해도 혼자 착각했다가 실망하고 싶지 않으니까. 상처받고 싶지 않으니까.      


왜 이렇게 됐을까. 엄마 때문이다. 몇 번의 유산과 직전 아이를 인큐베이터에서 떠나보낸 후에 낳은 늦둥이 외아들. 이 설명 하나만으로도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을 수밖에 없는 아이였을지 짐작이 갈 것이다. 그런데 웃긴 건 군대를 가기 전까지도 나는 그 사랑을 마음으로 느껴본 적이 없다. 엄마의 사랑 방식이 언어적 표현이 아니었기에. 따듯하게 나를 품어 주거나 내 감정에 공감해주거나 하는 분이 아니었기에.     


그 괴리가 어린 시절부터 컸던 것 같다. 분명 사랑받고 있다는 걸, 사랑받지 않을 수가 없다는 걸 머리로는 알았지만 그게 마음으로까지 와닿기는 힘들었다. 어린 시절엔 집안 사정도 너무 좋지 않아서 내가 기억하는 엄마는 늘 예민하고 무서운 모습이었다.      


그래도 ‘사랑한다.’는 말은 몇 번은 들어 봤던 것 같다.-이마저도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건 조금 슬프다- 그런데 내가 엄마한테 평생 제발 한 번이라도 듣고 싶었던 말은 ‘미안하다’와 ‘고맙다’였다.      


어린 시절에는 너무나 무서웠던 엄마, 그리고 조금 크고 나니 몸도 마음도 너무나 많이 무너져 있던 엄마였기에 자라면서 내가 받은 상처들이 분명 있었다. 그래서 나는 엄마한테 ‘미안하다’는 말이 한 번은 듣고 싶었다. 이제는 어른이 된 나이기에 그 말 한 마디면 나의 상처들을 다 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한 삶 가운데도 참 열심히, 그리고 잘 살기 위해 노력해왔다. ‘사랑한다’는 말은 듣지 못해도 ‘잘했다’는 칭찬은 들을 수 있었으니, 그 칭찬 한 마디를 듣기 위해서 공부를 잘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엄마의 자부심이 됐다. ‘잘난 아들’. 그런데 그 자부심이 너무나 컸던 걸까. 엄마는 단 한 번도 내게 ‘고맙다’는 말도 하지 않으셨다. “쉽지 않은 상황들 가운데서도 잘해줘서 고맙다.”는 말이 너무나 듣고 싶었는데. 내가 잘 큰 건 모두 당신의 공이 되어 버렸다. 

    

애석하게도 나는 이제 앞으로도 ‘미안하다’와 ‘고맙다’는 두 마디를 들을 기회가 없어졌다. 이 말들을 들었다면 쌓인 나의 상처들을 치유하고 지나온 나의 아등바등했던 삶을 위로하며 더없이 맑은 마음으로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딱 두 마디면 됐는데. 누군가에게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내뱉는 저 두 마디면 충분했는데.      


이 나이가 돼서 “내가 이렇게 꼬여 있고! 표현이 없으면 잘 믿지 않고!! 이러는 건 다 엄마 때문이야!!!”라고 하는 게 얼마나 유아적인지 잘 안다. 그런데 참 웃기지 않나. 나의 엄마뿐 아니라 우리 모두 살면서 가장 쉽게, 가장 많이 하게 되는 ‘미안하다’와 ‘고맙다’를 오히려 가까운 사람들에게 하기 힘들다는 게.      


그럼에도 해야 한다. 가까울수록 더 미안함과 고마움을 표현해야 한다. 당신이 한 번 참고 뱉어 내지 않았던 ‘고맙다’와 ‘미안하다’는 말이 누군가는 평생 듣고 싶었던 말일 수 있다는 것을. 그 말을 아끼고 아끼다가 결국 한 번도 해주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미안하다. 고맙다.      

이게 뭐 어려운 말이었다고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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