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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운서 Apr 27. 2022

버텨낸 사람이 위너가 되는 거야.

일상을 버텨내는 것에 대하여.


 수습이 끝나고 한 달만에 메인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되었다. 아나운서가 몇 없는 지역사였기에 당연하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부 진행자들이 오랫동안 진행해 오던 프로그램을 내가 맡게 된 건 의미가 컸다.      


 방송국 생활은 여러 모로 쉽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내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그 1시간 반 정도만큼은 무척이나 행복했다. 멘트를 하고, 사연을 소개한 후 음악이 나가는 그 시간에 잠시 헤드셋을 벗고 스튜디오 내에 빵빵하게 울리는 음악을 만끽하던 순간의 그 느낌이란. 말과 글로 먹고사는 사람임에도 이 느낌을 뭐라고 더 표현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그 행복감만으로 내가 방송국에서의 생활을 버터기에는 쉽지 않았었나 보다. 많은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직서를 냈고 방송국을 나왔고 ‘나의’ 프로그램은 내 동기가 맡아서 진행하게 됐다.     


뒷담을 하는 것 같아서 조금은 미안해지지만 사실 내 동기는 여러 모로 인정을 받지 못하던 친구였다. 무척이나 예쁘고 선한 친구였지만 아나운싱도 업무 능력도 눈치도 조금은 부족해서 거의 매일 혼났었다-하지만 아주 심하게 혼난 날에도 선배의 “밥이나 먹으러 가자.”라는 한 마디에 양팔을 파닥파닥 흔들 수 있는 낙천적인 성격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시간이 꽤 지났다. 나의 프로그램이었던 그 프로그램에 더 이상 나는 ‘나의’라는 말을 하지 못하게 됐다.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동기가 그 프로그램을 2년 넘게 진행했고 그녀는 훌쩍 성장한 모습으로 완벽히 그녀의 프로그램으로 장악했다. 진행 실력은 내가 조금은 나았을지 몰라도 그 프로그램은 결국 그녀의 것이 된 것이다.      

그때 ‘승자는 버텨낸 사람이라고 패자는 버티지 못한 사람이다.’라는 말을 무척 공감하게 됐던 것 같다. 능력과 상관없이 나는 버텨내지 못했고, 그녀는 버텨냈으니.      


그 후로 가치관이 크게 바뀌었다. 그전에 나는 평생 ‘아나운서’라는 꿈 하나만 보면서 달려왔었기에 꿈을 꾸고 꿈을 이루는 사람들이, 정확히는 그들만이 멋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안다. 꿈을 꾸고 이루는 것보다 버티면서 그걸 지켜나가는 게 더 힘들다는 걸. 아니, 그냥 꿈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삶, 그 일상을 하루하루 포기하지 않고 버티면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래서 지금의 나는 일상을 버텨내는 사람들이 정말 멋있게 느껴진다. 주 5일도 아니고 6일을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식당에서 일하며 보내시는 사장님들, 오지 않은 손님을 기다리며 좁은 택시 안에서 하루 종일 계시는 기사님들, 밤낮 심지어 새벽도 없이 택배를 싣고 배송을 하는 택배기사님들, 알바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과 매일 9 to 6, 혹은 그 이상을 하며 출퇴근을 하는 직장인들까지.      


그리고 나 자신도. 아나운서를 그만두고 남들 보기에는 강의하며 멋지게 사는 것 같지만 불안정한 프리랜서로의 삶을 살면서 코로나로 직격탄도 맞고 또 그 가운데 엄마도 돌아가시고...그렇지만 이 삶을, 이 하루를 여전히 버티고 지켜내면서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나도.

     

쉽지 않은 하루였겠지만 오늘도 하루를 버텨낸 우리 모두에게 “잘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밤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믿었으면 좋겠다. 결국 버텨낸 사람이 위너가 된다는 사실을. 그리고 우리가 바로 그 위너라는 사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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