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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운서 May 20. 2022

때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가장 나을 때가 있다.

장례식장 조문 예절

말로 먹고사는 나조차도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이 말들이 의미나 있을까’하는 고민을 깊게 할 때가 있다. 바로 장례식장인데... 짧은 한 마디로 위로하는 마음이 다 담길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그 상황에서 길게 말을 건네기도 그렇고. 그래서 늘 “명복을 빕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정도의 말들만 했던 것 같다.   

  

내가 상주가 되어 보니 정말 내게 건네지는 위로의 말 자체는 하나도 기억에 남는 게 없었다. 오히려 어떠한 말들보다 와준 것 자체, 침통한 눈빛, 어깨를 토닥이던 손이나 따듯한 포옹이 훨씬 더 위로가 되었고 기억에도 오래 남았다. 커뮤니케이션에서 표정, 태도 등의 시각적 요소가 55%, 목소리, 톤 등의 청각적 요소가 38%, 말의 내용은 고작 7%밖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메라비언의 법칙이 가장 잘 적용되던 때가 아닌가도 싶다.      


그래서 가까운 사람들이 왔을 때 엄마 영정 앞에서 묵념을 하고 상주인 내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그들이 입을 열기도 전에 내가 먼저 이렇게 말하곤 했다. “어떤 말 건네야 할지 어려운 거 아니까 아무 말도 할 필요 없어. 저쪽으로 가서 밥이나 먹자.”      


‘위로의 말’ 자체는 기억에 남는 게 없었는데... 그러면 기억에 남는 다른 말들은 있었다는 것일까? 일단 기억에 남지 않았어도 그전에 조문객으로 가서 내가 건넸던 말들, 모두가 일반적으로 하는 ‘명복을 빕니다.’라든지 ‘기도하겠습니다.’라는 말은 오히려 거리감만 느끼게 했던 것 같다. 보통 상황이라면 "감정 좀 담아줘..."라고 했을 것 같은 느낌. 분명 그들도 그 전의 나처럼 많은 고민을 하고 했을 말일 텐데도 상주 입장에서는 감정과 마음이 그렇게 막 담겼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던 것 같다.      


반대로 기억에 남는 말들이 있었는데... 정말 어쭙잖은 위로의 말들이었다. “그래도 생각보다는 많이 버텼어.”라든지, “살다 보면 이런 때도 오는 거지.”와 같은 말들. 내가 빨리 떨치고 힘을 내길 바라는 마음에서 건넨 말들이었겠지만 듣는 그 순간에는 기분이 꽤나 별로였다.     


엄마의 장례식이고 뭐고 듣고는 다 뒤엎고 싶었던 말도 있었는데 “다 잊고 네 삶만 살아. 그게 네 엄마도 원하시는 거야.”라는 말이었다. 사실 말 내용보다 그 말을 한 사람이 문제였다. 아주 오래전이지만 우리 집에서 큰돈을 빌려가고 아직도 갚지 않으신 분. 그로 인해 엄마의 삶을 조금 더 힘들게 만들었던 분. 그런 분이 오셔서 엄마 앞에 용서를 구하기는커녕 감히 엄마가 원하는 거라고 들먹이며 내게 말했다는 것 자체가 정말 최악이었다. 차라리 아무 말도 안 하고 조문만 하고 가셨으면 나는 정말 다 용서하려 했었는데 말이지.


위로를 하려고 하는 말이든, 아니, 다 위로를 하려고 하는 말이었겠지. 어쨌든 상주였던 내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그 사흘 동안 ‘말’이라는 건 한 마디도 필요 없었던 것 같다. 나는 늘 ‘말로 표현하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말로 표현하지 않는 게 더 좋을 때가 분명 있다.     


대신 애정 가득 담은 눈빛으로, 침통한 표정으로, 너를 정말 어떻게든 위로하고 싶다는 간절함이 담긴 손길로, 그 순간에는 세상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따듯한 포옹 한 번으로. 그 어떤 것도 위로가 될 것 같지 않은 상황에서도 우리의 마음을 표현하고 그 진심을 전할 수 있는 수단은 분명히 있다.      


‘조문객 예절’. 예절...을 지켜야 한다는 느낌보다 가서 진심 담긴 위로의 표현 하나씩만이라도 하고 오면 되지 않을까. 아니, 그러면 되는 걸 넘어서 상주 입장에서는 충분하다. 옷을 어떻게 입고 오고, 어떤 손을 먼저 올리고, 분향을 어떻게 하고 이런 것들이 상주에게 중요하거나 기억에 남거나 하지는 않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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