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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운서 Jun 14. 2022

"대화가 잘 통하는 것 같아요."라는 말의 허상

“이렇게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은 처음 만나 봤어요.”

“한 번 만났는데 어떻게 이렇게 대화가 잘 통하죠?”     


하루에 소개팅을 두 번 나간 것도 아니었건만 ‘대화가 잘 통한다.’라는 말을 하루에 두 사람에게서 들었던 날이 있었다. 그런데 ‘통하다’라는 말을 쓰려면 나 역시 그 말에 공감을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나는 그 둘과의 대화가 너무나 힘들었다. 몇 시간 대화하지 않았지만 꽤 지친 채로 터덜터덜 집에 돌아왔을 정도로.      


사실 말로 먹고사는 사람이기에 누군가를 만났을 때 “우린 대화가 안 통하는 것 같아.”, “대화하는 게 어색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은 없던 것 같다. 그런데 그게 보통 위의 사례처럼 ‘관계성’의 관점-“우린 잘 맞는 사이예요!”-으로 이해될 때가 많다.      


하지만 대화가 잘 통한다는 건 관계성이 아닌, ‘노력’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 대화를 이끌어 가기 위해 나는 그 사람이 관심이 있을 만한, 자기의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만한 주제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질문한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하면 눈을 맞추며 갖은 눈빛과 표정을 통해서 “내가 정말 잘 듣고 있어요.”라는 표현을 한다. 상대가 자신의 이야기를 편하게 늘어놓을 수 있도록.      


사실 나이가 들고 사회생활을 할수록 ‘자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도, 기회도, 사람도 적어지지 않는가. 그래서 자기 이야기를 편하게, 많이 했을수록 사람들은 ‘대화가 잘 통한다’고 느끼는 것 같다. 그리고 ‘대화가 잘 통한다’는 생각은 그걸 넘어 ‘우리가 잘 맞는다.’라는 관계성으로 넘어가기 십상이다.      


주위에 보면 외모가 특출 나거나 한 게 아닌데 이성들에게 인기가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보면 대부분 ‘경청’이라는 능력을 잘 갖추고 있는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잘 들어주고, 잘 질문하는.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들과는 대화를 잘 나누지 못하는 사람들도 이들과 대화를 하면 대화가 잘 통한다고 생각하게 되고, 그로 인해 “이 사람은 나의 인연이야.”라는 마음으로까지 발전하게 되는 것이겠지.      


하지만 노력은 상호적이어야 한다. 원활한 대화를 위해 서로 노력하고, 그 정도가 맞는 것. 나는 그게 ‘대화가 통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내가 지치지 않는, 내가 힘을 덜 들여도 되는 대화. 내가 노력을 덜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상대가 노력해주고 있다는 거니까. 끊임없이 ‘다음에는 뭐 물어보지?’라고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상대가 내 이야기를 잘 듣는지 아닌지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서로 밸런스를 맞추면서 노력하기에 소위 말하는 ‘티키타카’가 되는 대화.      


선천적인, 혹은 운명적인 관계성이 아니라 ‘노력’이기에 내가 노력했음에도 좋은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면 그 상대에게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잘 들어주고, 나에게 적절한 질문을 하는, 사실 그렇게 많은 능력이 필요하지도 않은 이 정도의 노력도 내게 하지 않는 사람을 상대하고 그 관계를 붙들고 있기에는 우리가, 그리고 우리의 노력이 너무 소중하지 않은가.      


반대로 ‘대화가 잘 통한다’고 느꼈다면, 그건 결국 그만큼 상대가 나를 위해, 그리고 우리를 위해 노력해준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걸 ‘우리가 잘 맞는다.’ 혹은 ‘운명적’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그 상대의 노력을 칭찬해주는 건 어떨까. “오늘 대화 즐거웠어요. 즐거운 대화를 나누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말이다. 이 칭찬 하나가 상대로 하여금 더 노력하고 싶게 만들고, 그 노력이 또 더 좋은 대화를 만드는 선순환이 되지 않을까?     


좋은 대화는 그저 단순히 기분을 좋게 하는 걸 넘어서 쉽지 않은 우리의 삶을 버티게 하는 귀한, 어쩌면 가장 큰 축 중에 하나일 거라고 믿는다. 그러니 모두가 조금만 더 노력해 봤으면 좋겠다. 내가 대화 나누는 상대의 말을 경청하고, 따듯한 반응을 보이고, 관심을 담아 질문하고. 그러다 보면 결국 우리 모두가 대화가 잘 통하는 사이가, 누구와도 좋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그런 살 맛나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하는 이상적인 바람을 가져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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