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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운서 Sep 04. 2020

2주 차. '좋은' 스피치(1)

완벽한 스피치는 완벽한 스피치여서는 안 된다.

2-1.  
 
완벽한 스피치는 완벽한 스피치여서는 안 된다.  
 


대학교 1학년 때, 한 대학 연합 스피치 동아리에 들어갔었습니다. 스피치도 배울 수 있으면서 다른 대학교의 학생들과도 친해질 수 있다는 점이 참 매력적이었죠. 그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첫 오리엔테이션 겸 MT를 갔는데... 그 날이 저의 그 스피치 학회에서 보낸 첫날이자 마지막 날이 됐습니다. 왜냐고요? 스피치 학회의 학회장이라는 사람이 스피치를 너무 못했거든요. 
 
학회장이 스피치 하면서 많이 떨었냐고요? 아니요. 그럼 말을 많이 더듬었을까요?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자신감 넘치게 또박또박 잘 말했어요. 문제는 그게 과해도 너무 과했다는 거죠. 대학생 학회인데 정장을 입고 등장해서는 철저히 계산된 제스처와 과하게 큰 목소리, 자신감을 넘어 오만해 보이는 표정과 눈빛으로 아주 잘 외워서 하는 그런 스피치를 하더라고요.  
 
근데! 그런 스피치에 학회의 집행부라는 사람들이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습니다. 스피처였던 학회장도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고요. 덕분에 저는 미련 없이, "아 여기서 내가 배울 건 없겠구나" 하면서 그 스피치 학회를 나올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꽤 흐른 지금도 제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아니요, 오히려 더 강해졌죠.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동네에서 '웅변 학원'이라는 곳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학교에 웅변대회도 있었고요. 이 책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 중에는 웅변이 뭔지 모르는 분들도 있을 것 같아서요. 음, 정치색을 떠나 지난 대선에서 의도치 않게 코미디 소재로 쓰인 대선 후보가 한 분 계시죠. "누굽니까아아아아아!!!!" 라고 외치시던... 웅변이 그렇게 말하는 겁니다. 과한 제스처와 목소리로 "이 연사! 당당하게!! 외칩니다아아아!!!"라고 하는. 그리고 이게 좋은 스피치였던 때가 있었다는 거죠. 
 
문제는 지금은 아니라는 겁니다. 소위 '말 잘한다'하는 사람들 한 번 떠올려보시겠어요? 뭐,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나 스티브 잡스,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이낙연 전 총리나 유재석과 같은 사람들 말이죠. 어떤가요? 그들이 정말 완벽해 보이는, 강한 스피치를 하던가요? 아니죠. 이들의 공통점은 참 자연스럽게 말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자리에서든 자연스럽게, 대화하듯이 말이죠. 이게 바로  '좋은 스피치'입니다.  
 
그래서 완벽해 보이는 스피치, '너무 잘하는' 스피치는 절대 좋은 스피치가 아니라는 말이에요. 제가 대학생 때 '말하기와 토론'이라는 수업을 들을 때였는데요. 이 수업에서는 한 학기 동안 한 명이 네 번의 스피치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교수님뿐만 아니라 수업을 듣는 모든 학생들이 저의 스피치에 대한 피드백을 줬어요. 근데 제가 생각하기에 그 클래스에서 가장 말을 잘한다고 생각한 선배님이 저한테 이런 피드백을 주더라고요. "스피치를 너무 잘하면 그 실력 자체는 인정받을 수는 있지만 청중들에게 감동을 주지는 못 할 겁니다. 그저 재수 없게만 보일 수도 있어요."라고요.  
 
당시에는 좀 아픈 조언이었는데 시간이 조금 지나서 한 뮤지컬 배우를 보면서 제가 그 말을 이해하게 됐습니다. 원래도 노래를 잘하기로 유명한 배우였는데 이 배우가 노래 실력이 한층 더 좋아지는 큰 계기가 있었어요. 근데 그 이후로 이 배우의 노래를 들으면 그 전과 같은 감동이 느껴지진 않더라고요. 들으면서 "그래, 당신 노래 정말 잘해. 근데 뭔가...이젠 감동이 느껴지진 않아."라고 생각하는 스스로를 보며 "아, 나한테 전에 선배님이 줬던 조언이 이런 의미였구나"하고 깨닫게 된 거죠. 
 
조금 더 제 이야기를 해볼까요. 아나운서를 준비할 때 저는 면접까지만 가면 무조건 합격할 자신이 있었습니다. 스스로도, 그리고 주위에서도 제가 답을 참 잘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근데 기대와는 다르게 제가 면접에서 꽤 많이 떨어지더라고요. 이유가 뭘까 고민하는데 같이 스터디를 하던 친구가 "너무 완벽하게 답을 하지 말고 의도적으로라도 말을 좀 더듬거나, 음...하면서 시간을 끌거나 해보는 건 어때요?"라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그 조언대로 하자 면접 합격률이 확 높아졌습니다.  
 
결국 제가 이 시간에 이야기하고 싶은 건 딱 한 가지입니다. 완벽하게 해야 한다라는 강박을 버리세요. 오히려 조금 부족한 모습을 보이는 인간적인 스피치가 더 좋습니다. 자연스러움이 스피치의 생명이니까요.  
 
우리가 누군가와 대화를 합니다. 근데 그 누군가가 처음부터 끝까지 본인이 준비한 말만 해요. 잘 외워서 말이죠. 또는 처음부터 끝까지 어느 하나 틈이 느껴지지 않는 완벽한 모습만 보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사람에게 호감을 느낄 수 있을까요? '인간미'라는 말이 괜히 있는 건 아니겠죠.  
 
일대일로 하는 대화가 아니어도요. 발표든, 프레젠테이션이든, 면접이든, 연설이든. 청중들은 말하는 사람의 말을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스피치는 분명 '커뮤니케이션'이 되어야 해요. 청중들이 대답을 길게 하지 못하고 간단한 리액션밖에 못한다고 해서 스피치는 스피처의 원맨쇼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준비는 완벽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완벽한, 아주 잘 준비된 모습만을 보여줄 필요는 없습니다. 여러분 자신의 모습으로 스피치를 하세요. 그 어떤 누군가를 흉내 내는 게 아닌, 어떠한 기준이 아닌, 온전히 여러분 자신의 매력을 보여주세요. 최고의 스피치는 자연스러운 스피치이고, 결국 자연스러운 스피치는 여러분다운 스피치입니다.  






<자칭 꼰대 교수의 강의 노트 2-1> 



'좋은' 스피치 
 
1) 좋은 스피치는 '자연스러운' 스피치이다. 
2) 스피치는 스피처의 일방적인 원맨쇼가 아니라 청중과의 커뮤니케이션이 되어야 한다. 
3) 자연스러운 스피치는 자신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스피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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