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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질고개 Feb 17. 2024

1. 낯선 도시로의 전학

초등학교 5학년, 도시로 전학해서 자취생활을 시작했다. 여름방학이 끝나갈 무렵, 아버지 손을 잡고 학교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무실로 향했다. 비 온 뒤 고인 물웅덩이를 피해 가면서 걸었던 운동장은 무척 크게 느껴졌다. 학년별 한 학급이던 시골 학교와 비교해 새 학교가 엄청나게 큰 규모라서 나는 압도되었다. 교무실에 들어서니 많은 선생님이 개학 준비로 분주했다. 교무실 문밖으로 다시 몸이 밀리며 당황해하시는 아버지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도시에서의 험난한 삶이 예견되었다.


2학기 개학 날, 나는 학급 친구들과 부끄럽고 소심한 인사를 나눈 뒤 선생님께서 배정해 주신 맨 뒷자리에 가서 앉았다. 낯선 학급 분위기라 긴장을 조금 늦출 수 있는 뒷자리가 나쁘지 않았다. 학교생활이 차츰 익숙해질 무렵, 누군가 뒤에서 내 머리를 세게 때렸다. 되돌아보니 덩치 큰 아이가 낄낄대며 웃고 있었다. 

“니 오대서 왔노?” 그때 나는 학교에 씨름부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가 교실에 오는 날이면 같은 상황이 반복되었다. 나는 조금씩 머릿속 뇌가 수축해 가는 것을 느꼈다. 내 몸과 마음이 위축되고 움츠러들었다. 점점 외부 위협에 대해 겁을 먹게 되었고 다른 친구들로부터도 놀림을 당하기 시작했다. 마치 어린 코끼리를 말뚝에 묶어 놓은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시골에서는 극히 개인적인 일도 금방 드러나서 사람들에게 밝혀진다. 그러나 도시는 수많은 불공평과 폭력, 그리고 약자에게 상처를 주는 불의와 차별에 대해 사람들은 잘 알지 못했다. 도시는 그렇게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일들이 있었다. 무언가 숨기고 거짓말을 해야 하는 상황들이 많아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도 그렇게 나쁜 아이가 되어 갔다.


어느 날, 환경미화 심사를 준비하면서 교실 꾸미기 등 비용 마련을 위해 선생님은 몇 명의 학생들을 불러서 부모님께 후원금을 받아 오라고 당부했다. 주말에 시골에 내려가 부모님께 말씀드리니 천 원을 주셨다. 다음 주 월요일 아침에 선생님께서 다시 우리를 불러 가져온 돈을 모으셨다. 그런데…. 정확히 기억할 수는 없지만 다른 아이들은 하얀 봉투에 넣어 훨씬 많은 돈을 냈다. 그 당시 천원은 시골에서는 적지 않은 금액이었지만 도시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그 자리에서 천 원 지폐 한 장만 낼 수가 없었다. “깜박 잊고 부모님께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라고 하며 그 돈을 주머니에 숨겼다. 나는 그 천 원으로 갖고 싶었던 아카데미 과학조립과 과자를 사며 다 써버렸다.


도시 아이들에게는 방과 후에 농사일이나 소먹이 등 특별히 도와야 할 집안일이 없었다. 그래서 대부분은 집에서 학교 숙제나 예습과 복습을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집에서 공부해본 적이 없었다. 시골에서는 오로지 논밭에서 농사일을 돕거나 개천이나 산과 들에서 뛰놀기만 했다. 이런 내가 방과 후에 스스로 공부하기는 쉽지 않았다. 학교 수업 시간에만 공부하는 내 방식으로는 반 친구들의 학업 수준을 따라가기가 어려웠다. 성적이 엉망이라 기말 성적표를 부모님께 가져다드리지 않고 찢어 버렸다. 도시와 시골 사이에서 “깜박 잊었다”라는 거짓말은 쉽게 용서가 되는 상황 회피 수단이 되었다.


점점 거짓말에 익숙해지고 친구들과도 말이 거칠어지면서 도시 생활에 적응해 갔다. 검게 탄 얼굴, 어릴 적 이상하게도 노랗던 머리카락과 내 이름 때문에 같은 반 친구들은 나를 ‘노랭이 병신’이라고 놀렸다. 6학년이 되니 우리 반에는 시골에서 전학해 온 친구가 더 많아졌다. 나를 포함해서 촌놈이 3명이나 되었다. 그런데 하필 얼굴이 모두 까맣고 공부도 못했다. 어느 곳에서나 우리는 투명 인간처럼 스스로 분리되었다. 서원곡으로 봄 소풍을 갔을 때였다. 분명히 반 친구들과 함께 섞여서 출발했는데 걷다 보니 우리 3명만 뒤처진 채 걷고 있었다. 서로 말도 하지 않았다. 사투리가 너무 심해서 입만 열면 촌놈이라는 사실이 노출된다는 부끄러움이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까만 얼굴에 ‘촌놈’이라고 쓰여 있었다.


결점이 많았던 내게 이 복잡하고 무거운 도시는 점점 더 고립감과 우울감을 안겨주었다. 언제부턴가 유년 시절을 떠올릴 때마다 팀 버튼의 <어느 굴 소년의 우울한 죽음>이 떠올랐다. 제목 때문인지 아니면 삽화의 어울리지 않은 낯섦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과장되고 증폭된 내 유년 시절의 기억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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