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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질고개 Feb 17. 2024

3. 사춘기의 위축과 방어

중학교 시절은 내 인생의 암흑기다. 아마도 나의 뇌는 그때의 불리했던 기억을 모두 지워버린 것만 같다. 흩어지고 사라진 기억을 조각 모음으로 재구성해 보려고 노력했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처음 치러진 반 편성 시험에서 나는 62점을 받았다. 어쩌면 그 점수가 그 당시의 정확한 내 성적이라고 생각된다. 초등학교와 다르지 않게 위축된 중학교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영어가 내게 또 다른 문제였다. 학교에서는 알파벳을 건너뛰고 영어 첫 수업을 진행했다. 선생님의 발음에 따라 단어를 외치는 반 친구들의 그 우렁찬 소리에 압도되었다. 알파벳도 제대로 모르고 중학교 입학한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 같았다. 초등학교 입학할 때, 내 이름은 한글로 쓸 줄 알았는데….


어느 날 영어 수업에 한 친구가 선생님께 질문을 했다. 

“선생님, I like you와 I love you의 차이가 뭔가요?”

가뜩이나 영어 수업이 부담스러웠던 내게 친구의 질문은 큰 충격이었다. 아마도 학창 시절 내내 앓았던 영어 공포증은 그때부터였나 보다. 그렇게 영어는 나를 교실에서 더 심한 바보로 만드는 것 같았고 큰 좌절감을 느꼈다. 큰누나는 내가 알파벳조차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당시 청소년 월간잡지의 별책부록을 구해서 알파벳부터 가르쳐줬다. 시간이 지날수록 학업은 점점 뒤처져 갔지만 주변의 크고 작은 폭력에는 조금씩 익숙해졌다. 견뎌내기도 하고 적당히 회피하면서 중학교 생활을 시작했다.


2학년, 내 몸은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갑자기 키가 커지고 근육이 단단해져 갔다. 사실 나는 시골에서 내 나름대로는 힘이 있었고 싸움도 남들보다는 잘했었다. 어른이 되기 시작한다는 신호라 생각하고 싸움을 배우고 싶었다. 그때부터 복싱을 배우기 시작했다. 주위 형들에게서 싸움 잘하는 기술도 배웠다. 바로 선제공격이다. 대단한 기술은 아니지만, 실전에서 강심장만 있다면 효과 높은 기술이다. 먼저 오른손 주먹으로 최대한 강하게 상대의 귀와 턱 사이를 가격하여 평형감각을 잃게 한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상대의 목을 양팔로 힘껏 쪼여 감고 온몸의 체중을 실어 상대를 넘어뜨린다. 목을 감은 두 팔은 절대 풀지 않고 어깨 힘으로 온 힘을 다해 누운 상태를 버텨야 한다. 한마디로 개싸움이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고 누군가 싸움을 말리면서 끝나게 된다. 넘어진 상태에서 끝까지 힘으로 버티는 것은 상대의 힘과 체격에 따라 쉽지 않았다, 나는 밤마다 자취방 옥상이나 마당에서 다리 유연성과 상체 근육을 단련하는 운동을 했다.


싸움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내게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그 후로 누구도 나를 다시는 괴롭히거나 건드리지 않았다. 오히려 학교의 싸움꾼들과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었고, 서로가 서로에게 조심하게 되고 존중해 주었다. 자취방에서 그들과 함께 밥을 해 먹고 밥풀 묻은 그릇에 술을 마시며 담배 연기로 공룡, 도넛을 그리면서 자취생활을 즐겼다. 그렇게 어른 흉내를 내면서 나는 그 아까운 학창 시절을 무질서하게 보냈다. 솔직히 나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담배, 술, 복싱을 배우기 시작했다. 청소년 시절, 낯설고 서먹한 도시에서 학업을 등한시한 채 좌충우돌하고 사고만 치면서 보냈다.


사춘기가 막 시작된 중학교 시절, 즉흥적이며 감각적인 행동은 이성적으로 제어할 수가 없었다. 마치 전두엽의 영장류 뇌가 형성되기 이전, 파충류 뇌가 지배했던 것 같았다. 나는 점점 더 난폭해져 싸우고 맞으면서 그 시절을 보냈다. 밤에는 내 몸이 뜨거워져 잠을 잘 수 없을 만큼…. 누군가에게 얻어맞고 싶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감정들로 질풍노도기를 보냈다. 나는 한 마리의 파충류가 되어 갔다.


암흑 같았던 중학교 시절의 기억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그 시절의 잘못했던 일과 친구들과의 추억은 영영 지워버리고 싶었다. 뇌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 시간, 차차 어른이 되고 철이 들면서 의식적으로 지워버리려고 무척이나 노력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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