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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질고개 Feb 27. 2024

7. 다시 태어나는 결심

점점 주말에 시골 가기가 싫어졌다. 주말마다 시골에 가서 해야 하는 농사일이 싫었다. 시험공부를 해야 한다고 부모님께 거짓말하고 주말에 친구들과 놀았다. 농사일로 바쁜 가을 수확 철에는 나는 항상 시험공부에 바쁜 놈이 되었다. 뻔뻔하게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던 때다. 누나들은 주말 내내 시골 들판에서 벼 탈곡과 가을걷이로 농사일을 도와 힘든 시간을 보냈다. 나는 도시 친구들과 시내 번화가나 공원을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 거짓말은 기가 막히게 잘 먹혔다.


공부와는 거리가 멀어져 버린 고등학교 2학년 가을, 어느 일요일 저녁이었다. 친구들과 온종일 시내에서 놀다가 자취방에 돌아와 보니 주인아주머니가 황급히 내게 쪽지를 건넨다. 나는 불길한 생각이 들어 병실 정보가 적힌 쪽s지를 들고 시립병원으로 뛰어갔다. 아버지가 크게 다치셨다. 논에서 가을걷이 벼 탈곡하던 중에 경운기의 엔진 연결 밧줄에 면장갑이 끼어들어 가면서 손가락 3개가 절단되었다. 병실 문을 열었을 때 온 가족이 슬픔과 걱정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사진 스냅숏처럼 지금도 그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아버지는 붕대가 감긴 오른손을 들고 의자에 앉아계셨다. 어머니는 휴지통에 버렸던 비닐봉지를 다시 꺼내 들고 아버지의 절단된 손가락을 보인다.

“너그 아부지 잘린 손가락이다. 붙일 수 있을끼라 카던데 안된다 카네. 저런 손으로 앞으로 농사일을 우째 하겠노?”

어머니는 벌써 앞으로의 농사일을 걱정하며 흐느껴 우셨다. 훼손된 손가락은 당시의 의료기술로는 접합할 수 없었다. 누나들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과일을 깎고 있었다. 

아버지는 내게 말씀하셨다.

“죽을병도 아닌데 시험공부 안 하고 여 뭐 하러 왔노?”

“….”


우리 가족 모두는 한참을 흐느껴 울었다.


나는 그날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이제는 공부 열심히 하고 정직하게 살겠다고 마음속 깊이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때의 죄송함이 지금도 여전히 내 가슴에 남아있다. 

길고 길었던 내 방황은 그렇게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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