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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질고개 Feb 25. 2024

6. 북마산 우동

"여기에 남겠다는 얘기는 하지 마라. 여기에는 꿈이 없어. 우동만 있을 뿐이야."

마치 아버지가 어릴 적, 내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씀하신 것과 너무도 닮아 있었다. 아버지는 내게 일손이 필요한 농사일을 시키기는 했지만, 경운기 등 농기계는 절대 만지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나는 시골 태생 같지 않게 농기계를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 어머니 말씀으로는 자식이 도시에서 살다가 힘들면 "에이! 고향 내려가서 농사나 지을까."라고 생각할까 봐 그러셨다고 한다. 아마도 자식이 더욱 절박한 각오로 어려움을 이겨내고, 도시에서 잘 살아가기를 바라는 부모의 간절한 바람이 담겨 있으리라.


몇 년 전 <우동>이라는 일본 영화를 봤다. 마쓰이 우동 가게, 무뚝뚝한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기 위해 도시에서 방황하며 보낸 청년 시절, 갑자기 찾아온 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다시 아버지와의 기억을 통해 소중한 사랑을 되찾게 되는 훈훈함이 영화의 주된 이야기다.


스토리 전개 과정에는 방과 후 매일 같이 우동 가게 창틀을 기웃거리는 배고픈 동네 아이 하나가 등장한다. 아버지는 그 아이를 불러 우동 한 그릇을 내주는 장면이 있다. 영화 속 그 장면이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내가 마치 그 스토리 속의 아이가 되어 감정이입을 하게 되었다. 중학교 시절, 나만의 그 중국집이 문득 떠올랐다. 그 후 고향에 갈 때마다 점점 더 그곳을 찾아보고 싶어졌다.


‘우동’이라는 제목과 영화 속 그 한 장면은, 그동안 잊고 살았던 나의 어린 시절 기억 하나를 되찾아 주었다. 그때 나는 언제부턴가 자취방 책상 서랍에 동전을 모으는 버릇이 생겼다. 한 달, 아니 몇 달에 걸쳐서 동전 240원을 모으게 되면 방과 후 집으로 가는 길을 조금 벗어나서 북마산역 앞에 있는 어느 중국집의 우동을 사 먹곤 했다. 


그 시절, 나는 항상 혼자였다. 유일한 즐거움이던 우표수집 가게 창문에 붙여진 기념우표 구경을 위해 북마산역 앞을 걸을 때면 몇 발치 앞에 있는 그 중국집을 지났다. 맛난 음식 냄새에 끌러 용돈을 모은 날에는 용기를 내서 들어가 그 당시 푸짐한 양의 우동을 국물 한 방울 아껴가며 먹곤 했다. 주방장 아저씨가 나를 힐끔 쳐다보고는 주꾸미를 더 많이 올려놓아 한 그릇 가득히 덮여 있는 갖가지 해산물, 그 아름다운 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 그 당시를 떠올려 보면 우동과 우표수집 가게를 오갔던 것이 중학 시절 내 유일한 기억인 것 같다.


언젠가 어머니 생신을 맞아 마산 둘째 누나 댁에 온 가족이 모였다. 밤늦게 술자리를 하면서 그 우동의 추억을 얘기했다. 다음 날 아침 식사 준비를 위해 매형과 마산 어시장을 향하는 길에 북마산역 앞 그 중국집을 찾아 나섰다. 내 기억과는 조금 달라 있었지만, 그 가게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상남우체국을 조금 지나서 우표수집 가게와 함께 있는 그곳은, 지난 40년의 몇 가지 흔적은 여전해 보였지만 너무 이른 시간이라 가게가 굳게 닫혀 있었다.

점심시간에 다시 찾으려 했으나 나는 급한 일이 생겨 누님 댁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서둘러 서울로 올라와야 했다. 그 중국집의 우동을 맛보지 못한 아쉬움 때문인지, 그 후 나의 사춘기 추억이 옮겨져 고향을 갈 때면 아이들과 아내는 늘 그곳을 함께 찾고 싶어 했다.


지난해는 어머니를 모시고 온 가족이 진해 군항제 벚꽃 구경을 했다. 시골에서의 모든 일정을 조정하고 새벽부터 서둘렀다. 그리고 점심시간에 맞춰 추억의 우동을 기대하며 두 번째로 그 중국집을 찾아 나섰다.

그러나 몇 년 전으로 기억되는 북마산역 앞의 그 길에 나의 중국집은 없었다. 한참을 헤매다가 분명히 확신하는 그 위치에 깨끗하게 차려진 돈가스 가게가 있었다. 조심히 문을 열고 들어가 주인아주머니에게 내 어린 시절의 추억을 간단히 말씀드리며 혹시 주변에 최근까지 중국집이 없었는지 물었다. 지난해 11월에 그 가게를 처분하면서 새롭게 문을 열었다는 것과, 그 가게 주인을 기억하지는 못한다고 했다.

아, 조금 더 일찍 찾지 못했던 나의 게으름을 책망하고 후회했다. 다시는 찾을 수 없는 학창 시절의 추억을 잃어버려 사춘기 소년처럼 하루 종일 황망하고 후회막심해서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아름다운 시절은 그렇게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내가 버린 기억이라는 책망을 몇 번이고 반복하면서 서울로 향했다. 그동안 나는 게으름과 관성으로 기계처럼 일만 하며 일상을 살아가지는 않았는지…. 

사실, 나는 지금까지 뒤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왔다.


모든 것은 변하는데, 세상이 나를 위해 영원히 정지해 있을 것이라는 생각과 막연한 기대를 했던 이 못돼 먹은 버릇. 이제 90세를 넘으시는 어머니도 나를 기다려 주지 않을 것만 같다고 생각하게 된다. 살아가면서 간절히 원하는 것들은 절대 미루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거듭했다.


다시 돌아오지 않는 시간은 내 자신으로부터 조각처럼 하나씩 떨어져 나간다. 그것은 내상(內傷)만큼 큰 통증이 되어 내 마음을 관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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