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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질고개 May 07. 2024

18. 성년의 날, 아들에게


우리나라 기념일 중에서 날짜가 지정되지 않은 날이 있다. 그중에 5월 셋째 주 월요일은 성년의날이다.


2011년 5월 16일 큰아들, 2014년 5월 19일 둘째 아들 성년의날을 맞이한 참으로 가슴 벅찬 날들이었다. 아내와 고민 끝에 아들의 가죽 지갑과 부모의 마음이 담긴 축하 편지로 그날을 기념하고자 했다.     


벌써 5월입니다.

대한민국 젊은 청춘, 그들의 성년의날을 축하하며….


두 자녀 성년의날에 부모 마음을 담아 보낸 두 편의 가족 메일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 Original Message -------

Sender : 안O진 E6(수석)/수석/OOOOOO/OO전자

Date : 2011-05-16 13:05 (GMT+09:00)

Title : 성년의날, 사랑하는 아들에게


사랑하는 아들에게!


오늘은 우리 큰 아들이 사회에서 어른이 되는 성년의날이다. 우리가 함께 살면서 오늘같이 가슴 벅찬 날은 없었던 것 같구나.     


이 특별한 날을 어떻게 기념할까를 어머니와 고민했다. 어머니는 가죽 지갑을 준비하고 아버지인 나는 이렇게 축하 편지를 쓰기로 했다. 아침 출근길에 우리가 함께한 지난날을 떠올렸다. 온 세상이 신선해지고 숨이 막힐 것 같은 감동과 가슴 사무치는 무엇이 뒤섞여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26년 전 대학 1학년 늦가을, 서울교대 교정에서 어머니와 아버지는 처음 만났다. 대학 4년 내내 함께 보낸 학창 시절과 결혼, 그리고 네가 태어났다. 태어나던 그날, 아침부터 만삭의 어머니가 불안정한 상태로 안절부절못했다. 유모선 산부인과 원장님의 부인께서 새벽부터 오셔서 상계 주공 6단지 국민은행 뒤 13평 좁은 아파트에서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제왕절개 수술이 불가피한 상황이 되면서 황급히 병원 분만실로 옮겨지고 얼마 뒤 너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사모님께서 아이를 안고 이 아버지한테 안아보라고 했다. 조심스럽게 너를 처음 내 가슴으로 안았다. 갑자기 나는 알 수 없는 감정이 복받쳐 펑펑 울었다. 잊을 수 없는 우리의 첫 만남이었다.     


지친 몸으로 퇴근해서 아파트 문을 열면 너의 아기 분 냄새가 방 안 가득했었다. 그 향기가 아버지의 오랜 객지 생활에서 항상 꿈꿔왔던, 처음 느껴보는 행복한 가정이었다. 너는 우리에게 꿈과 행복을 주었다.     


성년의날, 아버지에게 성년은 어떤 의미일까?


초등학교 중퇴로 더 이상 배우지 못한 할아버지는 평생 농사꾼으로 살았다. 할아버지의 인생 역전은 도시로 유학 보낸 아들에게 희망을 걸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5학년이던 아버지는 결혼할 때까지 줄곧 자취생활을 했다. 아버지는 성숙하지 못한 채 학창 시절을 공부에 관심을 두지 않고 헛되이 보냈다.    

 

고등학교 2학년 늦가을, 친구들과 놀다 늦게 돌아온 자취방에서 갑작스레 연락받았다. 황급히 달려가 병실에서 마주친 할아버지 모습은 온통 왼손을 붕대로 둘둘 감은 채 초췌하기 그지없었다. 할머니가 휴지통에서 꺼낸 비닐봉지의 흙 묻은 할아버지의 손가락! 차마 이 아버지는 울음부터 나와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죽을병 걸린 거도 아인데, 시험공부 안 하고 뭐 하러 왔노?”

그 순간, 아니 그때 그 순간부터 아버지는 어른이 되기로 결심했단다. 뒤돌아보면 바로 그날이 아버지의 성년의날이었다.     


그날부터 정신을 가다듬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1년 재수로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지금도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도 흔들리지 않고 매사에 긍정의 힘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은 그때의 죄송함 때문이었다. 직장 생활에서 견디기 힘든 고통과 중압감을 느낄 때면 항상 하늘에 계신 할아버지를 생각한다. 잃어버린 손가락과 검게 타 버린 할아버지 얼굴. 그리고 자취방 곤로 앞에 담배 물고 쪼그려 앉아, 라면 끓기를 기다리던 이 아버지의 보문동 산꼭대기 좁은 자취방. 그런 기억을 떠올리면 목이 메면서 엄청난 긍정 에너지가 온몸으로 퍼지는 야릇한 기운을 지금도 느낀다.     


언제 시간 되면 아버지 대학원 졸업 논문의 후기를 꼭 읽어 보렴,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많이도 깨알같이 적어 놓았으니…. 아버지의 성년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어머니를 만나 사랑을 배우고 너희들을 만나 행복하다. 일찍이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살아왔던 가난과 노력하는 인생으로부터 이어지는 가족애가 아닌가 싶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는 너희의 교육에 대해 어머니와 고민했다. 네가 유치원을 막 입학하고 영민이가 말을 배우기 시작할 때부터 우리만의 가족 문화로 어릴 적부터 남다르게 키우기로 했다.      


“아빠·엄마가 아닌 아버지, 어머니”라는 호칭이지만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는 믿음, 너희 방도 없이 지금까지 온 가족이 한 방에서 함께 생활, 겨울에 난방을 줄이고 절약을 가르치고자 했던 일, TV를 끄고 PC 게임 금지, 핸드폰 금지, 초등학교 졸업까지 잘못을 용서치 않고 체벌, 아버지 대학 시절 수집한 단소와 대금으로 너희를 집요하게 체벌했던 일들이 어린 너희에게는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때로는 회초리로 너희를 때리고선 가슴이 미어질 정도로 미안해하곤 했다.     


외갓집을 다녀오면서 자동차 안에서 “PC 게임이 재미있어 도저히 견딜 수 없다”라고 눈물을 흘리던 네 말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렇게도 힘들었지만, 지금까지 부모 믿고 잘 따라와 줘서 고맙고 미안하다. 최근에 너도 “자식을 낳아 꼭 같은 방식으로 기르고 싶다”라는 말을 듣고 나니 대견하게 자랐다고 생각했다. 학창 시절을 잘 견디고 노력한 덕택에 남부러워하는 전공과 대학에 입학했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큰 기쁨이었다. 할아버지께서 폐암으로 돌아가시기 직전에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궁금해서 여쭤봤을 때, 아버지가 대학 합격한 날이라고 말씀하시더라.     


최근 2년간 네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갑자기 자유로워진 대학 캠퍼스에서 동아리 활동으로 바쁘게 보냈지. 버거울 정도의 오케스트라 동아리 총무 역할을 준비하던 올해 초 여주 신륵사 일성콘도에서의 일은 네게 큰 충격이었을 거다. 그러나 세상 모든 일을 다 잘할 수는 없다. 많은 사람과의 복잡한 활동, 관계 속에 살아가면서 우리는 순간순간 선택해야 하고, 책임과 회피가 뒤섞여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그런 열린 세상에서 때로는 화이트 라이어나 얌체가 되고 차선을 선택하기도 한다. 경계의 선택에서 자신 있게 성큼성큼 너의 길을 걸어가길 바란다.     


이제는 집안일들도 관심을 두고 동생 공부나 진학도 조언하길 바란다. 사람과의 관계와 배려를 배우고 좋아하는 일에 몰입해서 자신의 빛깔과 향기를 만들어 가기를 바란다. 우리는 네가 요즘 대학 생활의 고민을 슬기롭게 선택하고 헤쳐나갈 것을 믿고 지원해 줄 거다.     


가끔 어머니와 둘만이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너희가 성장해서 결혼한 이후의 삶에 대해 계획한단다. 조금 더 열심히 노력하고 절약해서 서울 변두리, 마당 있는 단독 주택에서 함께 살거나 언제든 찾아와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그런 보금자리를 준비하는 꿈을 갖고 있다.      


언젠가 네가 말했던 것처럼 우리 마음 변치 말고 항상 함께하는 우리만의 문화로 재미있게 살아가자. 우리가 지구에 와서 한평생 동행할 수 있어 얼마나 행복한지를 이렇게 몇 자의 글로 표현하기는 힘들구나.


사랑한다, 우리 아들!       

   

2011년 5월 16일

아버지와 어머니가



----Original Message-----

From: "OOO"<ahnoak@naver.com>

Sent: 2014-05-19 (월) 12:36:44

Subject: 사랑하는 아들에게


사랑하는 아들에게 !


오늘은 우리 둘째 아들 성년의날이구나, 정말 축하한다.

이제는 너도 성년이 되었겠지!? ^^


너의 형 성년의날이었던 지난 2011년 5월16일에 느꼈던 것과 한가지 마음으로 어머니와 아버지는 가슴 벅차게 오늘 아침을 맞이했단다. 형이 받았던 것과 꼭 같이 어제저녁에 어머니가 축하 선물로 건네준 멋진 지갑, 그리고 아버지는 가슴 벅찬 기쁨으로 이렇게 편지를 보낸다.


3년 전이 문득 생각난다. 형 성년의날 보낸 축하 편지를 저녁에 함께 읽을 당시, 소파에 앉아 있던 너는 편지를 읽지 않고 나중에 함께 읽겠다고 했었다. 그래서 그날 형에게 보낸 성년의날 축하 편지도 함께 붙여서 보내니 이제 드디어 읽어 보길 바란다. 그 편지와 오늘 보내는 편지가 모두 한가지 마음이니 이어서 읽어 가슴에 담고 우리 함께 더욱 더 행복하고 재미있게 살아가도록 하자.


항상 너를 생각하면 둔촌동 아파트 단지 모서리에 살면서 유난히도 개구쟁이로 요란하게 떠들며 형 친구들과 어울리고 동네 말썽꾸러기로 살았던 너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욕심 많고 누구에게나 지기 싫어하고 힘도 되지 않을 큰애들에게 무모하게 덤비는 등 고집불통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지만 감기 몸살 때문에 몸이 좋지 않아도 아침 일찍 일어나 항상 누구보다 먼저 등교 준비를 끝내고 할머니와 손잡고 힘차게 학교를 향하던 대견하고 적극적이었던 모습들이 이제 너의 유년 시절 기억이 되었구나. 벌써 이렇게 니가 성년으로 훌륭하게 자라 대학생이 되었으니, 세월은 참으로 빠르게 흘러왔다. 해가 거듭될수록 부모는 아이들에게 나이를 준다고 하듯 어릴 적 개구쟁이었던 네가 이제 믿음직하고 책임감 강한 청년으로 자랐으니 너희 두 형제가 지금까지 특이한 우리 가족 문화를 스스로 절제와 노력으로 잘 따라 준 것에 대해 항상 고맙게 생각한다.


아버지는 대학 1학년 어머니를 처음 만나 학창 시절을 함께 보내고 졸업 후 곧바로 결혼해서 살림살이를 시작할 무렵, 정말 보잘 것 없는 형편에 가난과 검게 탄 부모님 얼굴과 땀 냄새를 내 인생의 쓴 약으로 삼아 지금까지 살아왔다.


그때는 너희들에게 해주고 싶었던 것들과 앞으로 가야 할 꿈 외에서는 아무것도 없었던 모든 것이 부족했다. 어린 시절 맑은 눈망울을 삶의 용기와 힘을 삼아 이 전쟁 같은 생존 경쟁의 사회에서 이를 악물고 힘겹게 살아가야 했던 때라 너희에게 부모로서의 여유와 배려가 충분치는 않았던 유년일 것이다.

대답을 알 수 없는 우리네 인생길은 긴 여정이라 때로는 척박한 세상살이가 고달플 수도 있어 항상 인내하고 참는 것을 누구보다 먼저 너희들에게 일깨워 주고 또 생활의 지혜를 가르치려는 부모의 욕심으로 인해 남다르게 엄격한 생활을 너희에게 지나칠 만큼 강요해 왔었다.


가진 것이 없으면 바닥 생활부터 참고 이겨낼 체력, 그래서 형과 너는 어릴적 부터 수영 선수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혹 거듭되는 실패와 깊은 좌절감, 그리고 스트레스 환경에서도 너희의 영혼을 달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인생의 좋은 친구로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그 비싼 과외 선생님들을 집으로 모시면서 가르쳤었다. 그 당시 우리 형편으로는 어려웠지만 그 대신 외식을 절대 하지 않았고 결혼식 때 장만했던 세탁기를 너의 중학교 졸업식 그날까지 19년을 사용했을 만큼 어머니의 지독한 절약으로 가능했었다.


니 중학교 졸업식 동영상을 보면 그날 아침에 형이 캠코드로 그 헬리콥터 정도의 진동과 소음이 나는 우리 집안 첫 세탁기와의 정든 이별을 기록했던 동영상이 있으니 꼭 보시길.^^

어려웠지만 너희가 부모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따라온 것과 이제는 훌륭하게 자라 서로의 가치관과 성실함이 배어있는 행동들을 볼 때면 우리 서로가 이제는 많이 닮아져 있어 더욱 강한 가족애와 보람을 느끼고 정말 행복하다는 생각을 어머니와 자주 하곤 한다.


영민아, 생각나니!? 2003년 3월.


우리 가족 최고의 결단, 아버지가 회사를 그만두고 1년 동안의 세계 여행. 마지막 여행지였던 뉴질랜드에서 어머니와 네가 먼저 귀국하고 형과 아버지는 남아서 배관공 Plumber, Vic과 Fiona 집에서 지붕 타기 등 일을 도와 기숙하며 서로 떨어져 살았던 시절이다. 그 사이 네가 교통사고를 당해 학교 앞 학원버스에 치여 오른쪽 발목이 잘렸던 그때가 우리 가족 최대 위기였다.


전화상으로 어머니가 몸이 불편해서 입원한 것으로만 알고 형과 함께 황급히 귀국해서 강동성심병원 입원실을 들어서고 네 모습을 보고서야 우리는 사고 상황을 알게 되었다.

수술 당시에 네가 어린 나이로는 견디기 힘든 통증이지만 잘 참고 견뎌내는 대견함을 어머니로부터 뒤늦게 전해 들었었다. 발목 절단 상황이라 사고 이후 영구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의사 선생님 말씀을 듣고 온갖 정보와 인맥을 동원해서 수술이 끝난 상황이지만 부모 마음에는 혹시 모를 2차 수술을 우려해서 늦었지만, 최고의 접합수술 전문 병원으로 소문나 있던 신촌연세병원으로 구급차를 타고 황급히 강변북로를 가로질러 이동했던 기억이 생각나는구나.


그 당시 넉넉하지 않은 살림이지만 다른 지출을 절약하기로 하고 니가 조금 더 편안히 입원 생활을 하기 위해 보험이 되지 않는 몇개월에 걸친 비싼 4인용 병실을 고집했었지. 그 당시 할머니, 어머니, 그리고 형과 함께 우리가 모두 똘똘 뭉쳐 가족의 위대한 힘을 모아 함께 했던 기억들이 지금도 항상 우리 가족이 더욱더 신뢰하고 자랑스러워하며 남다른 우리만의 가족 문화를 존중하고 지켜나갈 수 있었던 것 같구나.


그 후 몇 년간의 아산병원에서의 재활, 스포츠 의학까지, 그리고 아버지 주말 퇴근 후 위례초등학교 운동장, 중고등 학교 시절에는 세륜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항상 우리 가족만의 운동으로 축구를 함께 했었지. 처음에는 너를 왼발잡이로 만들기 위해 형과 함께 운동장에서 너를 혹독하고 집요하게 꾸짖어 가며 축구로 운동장을 함께 뛰고 놀았고, 남달리 노력한 덕택에 이제는 축구를 즐길 수 있게 되었구나. 그로부터 몇 해 뒤 어느 가을 늦은 밤, 퇴근하고 보니 우리 가족 모두가 그때까지 자지 않고 아버지 퇴근을 기다리고 있었던 그날이 떠오른다.

어머니와 형의 힘찬 박수와 함께 너는 가을 운동회 달리기에서 3등을 해서 상품으로 타 온 공책을 내게 자랑하며 건네주었다. 나중에 어머니 말씀으로는 앞에 친구가 넘어지면서 어부지리로 3등을 한 것도 있지만, 너를 천장 높이 들어 올리고 힘껏 안아 주었다. 그리고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화장실로 혼자 뛰어 들어가 참 많이도 울었던 기억이 난다. 어제 일요일은 참으로 오랜만에 베란다에 버려져 있던 축구공을 다시 찾아 바람도 넣고, 함께 학교 운동장에서 축구하던 그 시절이 그립다. 시간이 너무 빨라졌다는 생각과 여러 가지 마음들로 왠지 가슴이 아리는 느낌도 있었다.


밝고 맑은 모습과 뭐든 적극적으로 도전하는 호기심 많았던 너의 개구쟁이 시절이지만 잘못을 용납하지 않고 아버지는 일관성을 스스로 지키고자 꾸중과 체벌을 집요하게 했었다. 지금 너희들 사진을 봐도 어릴 적 귀여움이 남달라서 사랑스럽기만 한데 내가 너무 지독하고 병적으로 나무라기만 했는지 반성도 한다. 어린 너희에게는 지나칠 정도로 힘든 시절이었지만 밝은 모습을 항상 잃지 않았던 너를 보면 그 대견함이 아버지 인생에서도 많은 배움이 되었단다.


중학교 사춘기, 너의 달라진 성격과 행동들로 인해 어머니와 가족 모두가 많이 당황하기도 했었다.

다행히 그 기간이 길어지지 않고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4월 16일 출근길 이른 아침에 아버지가 잊지 못할 우체국 소인이 찍힌 한 통의 편지를 어머니로부터 건네받고 읽었던 기억이 난다.


니가 보낸 청년기 고백과 인생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엿볼 수 있었고 앞으로 학업에 집중해서 부모님이 원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이 담긴 편지였다.

그 편지를 읽고서 아버지가 뭔가 의미 있는 말을 하려 했지만, "아버지는 고등학교 2학년 가을에 사람이 되었는데 너는 아버지보다 1년 먼저 이렇게 어른이 된 것 같구나. 축하하고 대견하구나"라며 네 어깨를 두드려 주고 출근을 서둘렀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 아버지는 중요한 개발 프로젝트를 맡아 매일 같이 힘들고 지친 나날이었지만 그 편지를 읽고서 조금 늦어진 그날 출근길에 내 머리가 신선해지고 뭔가 새로운 들뜬 기분과 벅찬 감동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구나. 그때가 아마 너에게는 성년의날이라는 증표가 될 것 같다. 지금도 그 당시 니가 보낸 그 편지 한 통을 아버지는 우리 가족, 특히 네 인생 전환점, Tipping Point로 기억하고자 잘 보관하고 있다. 나중에 네가 결혼하는 날 아버지는 너의 모든 기억과 영상물들을 모아 하나의 다큐멘터리처럼 한 편의 인생 드라마를 만들어 결혹식 피로연에 펼쳐 보이려고 한다.


인생을 살아보니 자신에게 뭔가 신체적인 약점이 있다는 것이 오히려 나를 더욱 강하게 하는 극복 의지가 생기는 것 같더구나. 그 후에 형과 함께 축구를 통해 너를 왼발잡이 슈터로 키우기 위해 주말이면 아버지 늦은 퇴근을 기다렸다가 함께 위례초등학교, 세륜/오륜초등학교를 옮겨 다니며 우리가 운동장에서 함께 축구했던 기억이 이제 아버지에겐 그리운 추억이 되었단다. 유독 그 당시 자전거 연습이라 축구하면서 니가 더욱 밝고 자신이 있게 학교생활을 하는 것을 보면 내 자신도 너를 통해 그 긍정 마인드를 배우고자 했단다. 어릴 적 새벽 이른 시간, 네가 잠든 시간에서 출근길에 앞서 니 발을 쓰다듬고 얼굴을 비비고 집을 나서면 어디선지 모를 강한 열정과 뜨거운 것이 아버지의 온몸을 감싸고 돌며 엄청난 긍정 에너지가 충전되곤 했단다. 어려운 시절을 니 덕택에 아버지도 잘 이겨내고 이렇게 우리가 함께 지금의 행복을 누리고 있는 것이라 믿고 있다. "살아가면서 힘들고 어려움을 겪지 않은 사람은 인생 최고의 맛을 느끼지 못한다."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가 살아가면서 어렵고 힘들 때, 스스로 노력과 극복 의지로 이겨내어 자신이 꿈꾸어온 것들을 이룰 때 그 성취감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치 크고 감동적일 것이다. 골이 깊을수록 산도 높듯이 절박한 심정으로 어려움을 참아가며 노력한 사람만이 그 목표를 달성했을 때의 그 벅찬 기쁨과 감회가 남다르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구나.


아버지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아버지가 있었다. 그러나 내가 어릴 적에는 남들에게 말 한마디조차도 제대로 못 하시는 아버지가 싫었고, 자취방에 반찬과 쌀을 두고는 빈 양철 들통을 들고 아무렇게나 어시장에 가시던 길에 내 어머니일 것이 부끄러워 멀리 떨어져 걸었던 내 학창 시절, 가난한 내 처지 모두가 나의 게으름과 실패를 정당화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도 고등학교 2학년 가을,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걸어온 먼길에 많은 어려움도 있었지만 정말 후회되지 않고 모두가 오늘과 같이 이런 기쁨을 주기 위한 우리 가족의 위대한 드라마인 것 같이 느껴진다. 그 당시 동네에서도 유독 더 가난해서 자기 형편도 되지 못하는 동네 일꾼이나 하는 주제에 "아들 대학 보내겠다."라는 황당한 말을 항상 하고 다닌다는 조롱을 받곤 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비록 다른 사람만큼 배우지는 못했지만, 자식에게만은 무모하고 고집불통으로 당신의 못 배운 한을 풀고 싶었고 공부만이 이 가난을 이겨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확신과 집념을 가지셨던 것 같다.


너도 그동안 많은 것들을 참아가면서 노력한 덕택에 형과 같이 남들이 부러워하는 원하는 전공을 찾아 대학 합격이 되고 어머니와 함께 너의 입학식에 참석하고 보니 너무 남다른 느낌과 함께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너희들 덕택으로 어머니와 아버지가 나중에 죽어 저세상에서 기다리시는 할아버지를 만나면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다."라는 얘기를 해 주실 것만 같구나. 고맙다.


요즘은 너희 모두 병원 실습과 기숙사 생활을 하다 보니 주중에는 항상 어머니와 아버지 둘만 있어 집안이 너무 썰렁해서 처음에는 너희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견디기가 정말 힘들었단다. 그럴 때면 어머니와 우리가 함께 살아왔던 어릴 적 기억을 서로 얘기하면서 보낸단다. 어릴 적부터 우리는 항상 한 방에서 어머니와 너, 그리고 나와 형이 2인 1조로 고등학교까지도 침대와 방바닥을 하루 번갈아 가면서 재미있게 사는지 보니 이제는 더욱 너희들 체취와 향기가 그립구나.


앞으로 몇 년간의 인생 단기 로드맵으로는 지금은 대학 시절은 마음껏 즐기고 본과부터 몰입해서 훌륭히 학업을 마친 후에 인턴부터는 반드시 서울 세브란스병원으로 와서 형과 함께 집에서 다니면서 더 멀리 가기 위해 넓고 높은 꿈을 꾸길 바란다.


살아가면서 지금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때가 오겠지만 인생은 저점에서 어떻게 잘 버티고 이겨낼 수 있느냐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아버지가 최근 몇년 동안 관심을 가지곤 했던 진화론을 요약하면 모든 것은 변하며 그 변화는 무언가 부족하고 어려운 상황에서 일어나며 그 상황에서 자연선택을 하게 되며 그것이 곧 진화라는 것이다. 항상 어렵고 힘든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몸과 마음을 길러도록 노력하길 바란다.


이제부터 성년으로서 인생의 귀감이 되는 것들에 항상 귀 기울이고 가슴 깊이 담아 너의 인생행로, 그 먼 길을 걸어가는 나그네로서 이 장도 길에 항상 행운이 함께 하길 기원한다.


2014년 5월19일

아버지와 어머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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