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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질고개 Apr 30. 2024

17. 누나의 아리랑

지난 주말에 가족들과 시골에 다녀왔다. 첫째 조카, 큰누나의 아들 결혼식이었다. 우리 가족의 남다른 사랑을 받고 자란 조카의 결혼이 왠지 기쁘지만은 않았다. 자신의 감정을 조절할 능력이 부족해서인지, 나 자신이 이기적인지, 오만가지 생각들로 머리가 복잡했다.     


누나가 첫아이를 낳고 처음으로 친정에서 보낸 그 밤이 떠오른다. 우리는 집안 대청소를 해서 깨끗한 방과 공기를 준비하며 아이 맞을 준비로 들떠있었다. 집안의 대를 잇는 첫 손님이라 그런지, 가족에게 그 아이는 진화의 경이로운 생명이며 축복이었다. 넓은 이마와 초롱초롱한 눈매, 웃음 띤 얼굴, 그 닮음들이 어찌나 귀엽고 신기한지, 행동 하나하나에 신비로움을 느끼며 온 가족이 아이만을 보면서 하룻밤을 보냈다.


누나는 다음날 다시 시댁으로 돌아가야 했다. 마산 시외버스 하차장에 내려 부산행 버스로 갈아탈 시간이 충분치 않았다. 모두 서둘렀다. 그때 그 아이를 안고, 꽤 먼 길을 거친 숨을 내쉬며 폭발적으로 달리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야위어진 노인이 몸은 생각지 않고 하얀 아이를 안고 무거운 책임감으로 질주하는 모습을 보았다. 내 어린 시절에도 그렇게 나를 헌신적으로 키웠을 것 같은 그 장면이 지금도 생생하다. 잃어버렸던 조카와의 세세한 기억들이 지금 내 머릿속에서 폭풍처럼 터져 나온다.     


누나는 지독히도 가난했던 집안의 1남 4녀의 맏딸이다. 중학교 졸업 후 도시로 나가 공장 일을 하면서 동생들의 모자라는 학비와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고립된 시골에서 평생 사신 부모님조차 경험하지 않은 도시의 어려움을 어린 나이에 감당해야만 했다. 억척스럽게 일을 하면서도 학업에 대한 열정을 늦추지 않고, 몇 년 뒤 누나는 다시 고등학교 진학을 했다. 그 당시 나는 누나들로부터 낯선 도시에서 스스로 살아가는 법을 자연스럽게 배웠던 것 같다. 명절이면 누나가 사다 주셨던 멋진 추리닝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중매를 통해 결혼할 사람이 정해지자, 누나는 누구보다 내게 먼저 지금의 매형을 소개해 줬다. 매형과의 첫 만남을 나는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조금은 당돌했지만, “사람들은 태어나면서 평생 고생해야 하는 분량이 있다고 하던데, 우리 누나는 이미 그보다 훨씬 더 많이 고생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행복해야만 하는 사람이니, 고생 안 시켰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바람을 뜬금없이 말했다. 고등학생밖에 되지 않은 아이의 당돌한 말이었지만, 그때는 간절한 부탁이었다.     


결혼을 앞두고 폐물, 사주단자와 정성스레 장만한 시골 음식을 대절한 용달차에 싣고 아침 일찍 누나의 부산 시댁을 방문했던 날이 떠오른다. 도시 가정집, ‘아파트’라는 곳을 내 인생 처음으로 들어섰던 날이다. 집안 공기가 왠지 내가 숨 쉬던 공간과는 달랐다. 본능적으로 누나가 힘들 것 같은 불안감을 느꼈다. 그리고 새벽부터 아버지께서 거듭 당부하신 사돈집 방문 예절 등 절차를 거칠 필요도 없었고, 조금 냉랭한 짐꾼 대접을 받고 얼마 후에 나는 그 집을 나왔다.     


텅 빈 용달차를 타고 부산, 김해, 마산으로 오면서 운전기사의 투덜거림도 외면하고 차창 문을 활짝 열어 복잡한 감정들을 바람에 내맡겼다. 고속도로를 달리면서도 막연한 불안감과 설움이 참기 어려웠다. 짧은 방문이지만, 누나가 앞으로 항상 느끼게 될 낯선 공기가 불안해졌다. 


왜 여자는 시집을 가야 하는지…. 이 불공평한 어른들의 사회가 원망스러웠다.     

누나는 내가 고등학교 졸업하던 그해 겨울에 결혼했다. 낯선 도시 가정의 며느리 생활, 우리의 가난이 누나에게 많은 어려움과 한계를 주었다. 친정집에 올 때마다 누나는 울기도 했다. 촌사람이 평생을 모아온 논과 소를 팔아 기죽지 않을 만큼 딸의 혼사를 준비해 줬지만, 도시 사람들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던 것 같다. 부모님은 딸을 도시로 시집보낸 것을 자꾸 후회하게 되고 두 분의 무능력함에 서로 미안해했다. 삶이 더 복잡해지기 시작했고, 우리에겐 그 시절이 더욱 한스러운 시절이었다.     


대학 시절, 누나는 아이와 함께 서울에 올라와 내 뒷바라지를 하며 함께 살 생각으로 무작정 상경했던 때가 있었다. 누나와 둘이 서울 망우리 고개부터 구리시 입구까지 걷고 걸어 산비탈의 복덕방과 값싼 자취방을 번갈아 찾아 헤맸다. 그러나 가슴에 못이 박히고도 남을 부모님의 설득으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누나는 새 출발을 위해 매형과 함께 인천으로 이사를 했다. 자전거를 배워 우체국 배달원 시험으로 살길을 찾았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억척스러운 생활력으로 그동안 버티고 살았던 고단한 인생길이 또 시작됐다.


가끔 회사에서 객지 생활에 가족과 동생 뒷바라지를 하는 여직원을 볼 때마다, 나를 위해 젊은 시절을 희생하신 누나가 떠오른다. 조카의 결혼 소식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던 복잡한 마음이 이제는 서서히 풀려간다. 조카는 아는지 모르는지, 그 행복한 표정을 보면서 이상하게도 자꾸 서운했다. 그러나 모든 것은 지난 얘기가 될 만큼 생활은 다시 정상으로 돌아와, 누나와 매형은 서로 배려하며 단란하게 잘 살고 있다.     


어머니는 그때 연세가 많으셔서 결혼식 참석을 꺼렸지만, 어린 시절 외할머니 손에서 자란 조카의 마음과 매형의 간곡한 부탁으로 참석하셨다. 그리고 외할머니지만 양 사돈의 배려 덕택에 폐백 마지막에 신랑 신부로부터 인사를 받았다. 나는 그분이 전하는 외손주 부부에 대한 덕담이 궁금해졌다. 아들과 아내에게 어머니 말씀을 귀 기울여 보자며 말씀을 기다렸다.

“서로 조금씩만 양보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다.”

비록 짧았지만, 어머니의 소중한 결혼식 선물이었다. 피로연이 모두 끝나고 아내와 나는 폐백실에서의 어머니 덕담을 거듭 얘기하면서, 나 자신도 더욱 노력하고 배려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제 한 시대가 지나가고 있다. 파란만장한 시절이 지나면서 우리 가족 모두는 부모님의 성실함을 본받아 열심히 긍정적으로 살아왔다. 그렇게 보낸 세월은 그분을 ‘위대한 우리 어머니’로 만들었으며, 많은 자식이 서로 끈끈한 가족애로 정감을 나누며 살아가고 있다. 장성한 외손자가 멋진 새신랑으로 무대에 서 있는 결혼식장, 공간이 꽉 차 보이는 어머니로부터 비롯된 많은 일가친척이 하객으로 참석했다. 비록 불편한 몸으로 손자의 부축을 받고 있지만, 이제는 당당한 모습으로 촌로의 ‘부성댁’은 사람들로부터 인사를 받고 계셨다. 거칠게 농사일만 하며 한평생 살아온 그녀, ‘처녀 농군’이던 부성댁, 그분의 파란만장한 일생에 대한 주위로부터의 존경과 당신의 뿌듯함이 겹쳐 있었다. 나는 결혼식 내내 자꾸 눈물이 나서 어머니와 큰누나를 쳐다볼 수가 없었다.      

조카 결혼식을 마치고 가족들과 다시 시골집으로 향하는 승용차 안에서 어머니의 한 맺힌 울부짖음을 듣게 되었다. 어머니도 나와 꼭 같은 기분을 느끼며 하루를 보낸 것 같았다. 이 모든 가족사를 보듬어 안았던 어머니는 결혼식 내내 큰누나의 어려웠던 결혼 생활이 떠올라 가슴이 복받쳤다고 한다. 어머니의 이야기는 조카 결혼을 기다려 오면서 묘하게 느꼈던 내 기분과 겹쳤다. 한꺼번에 무언가 서럽게 복받쳐 아내와 아들 모르게 나도 숨죽여 울었다. 더욱 생생하게 누나와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하나뿐인 자식을 위안 삼아, 그 시절을 이겨냈던 것을 이제 나도 이해할 수 있다.     

분위기가 이상해서인지, 큰아들이 할머니 애창곡이라며 차안에서 ‘처녀 농군’을 블루투스 오디로 볼륨 높여 틀어 주었다. 내 평생토록 들어야 하는 노래일 만큼 목이 메고 농사일로 거칠게 살아온 어머니 한평생이 잘 표현된 노래다. 촌로의 오래된 한복을 깨끗이 차려입은 부성댁은 이미 위대해 보였다. 그분의 주위는 존경이 있었고 당당함과 승리가 있었다.    

 

서울로 다시 돌아오는 길은 추석을 앞둬서인지 고속도로의 정체가 심했다. 차가 가다 서기를 반복하니, 자꾸 매형과 누나와 함께 이 모든 감정을 술 한잔하면서 밤새워 얘기 나누고 싶어졌다. 전화를 만지작거리다 참다못해 그분들과 통화를 했다. 짧은 통화로는 나눌 수 없는 많은 것들이 못내 아쉬웠다.   

  

이제 한 시대가 지나간다. 사랑이 또 사랑을 낳으며 그 아이가 축복 속에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잘 살기만을 바라는 마음이다.

조카 부부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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