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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질고개 Apr 23. 2024

16. 친구의 결혼

고등학교 절친한 여덟 명 친구 중 유일한 총각이었던 친구로부터 뜻밖의 결혼 소식을 전해 들었다.

바쁜 업무를 마치고 황급히 회사를 빠져나와 수원 시외버스터미널에 갔지만 이미 창원행 막차는 떠난 뒤였다. 남아있는 가장 남쪽행 버스를 찾아 무작정 대전행 막차를 탔다. 대전 도착 후 막막했지만, 사람들에게 정보를 구하여 터미널 앞에서 동대구행 사람을 모으고 있는 택시 기사를 찾을 수 있었다. 다행히 내가 마지막으로 3명 카풀이 되어 한 차로 동대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동대구에서는 30분 정도 기다리니 진주행 택시 카풀을 할 수 있었다. 진주 가는 택시에 합승해서 진주에 도착하였다. 진주에서는 창원 가는 일반 택시가 빈번히 있었다.      


밤사이 나는 지구를 한 바퀴 돌아 새벽 시간에 창원으로 들어갈 수가 있었다. 술집을 찾아 밤새 술 마시며 기다리고 있던 새신랑과 친구들을 만났다. 밤길을 달려와 친구들과 우리 시대 마지막 남은 총각의 멸종에 아쉬움과 기쁨으로 함께했다.      


다음날 오전 10시, 너무 이른 시간에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그리 많지 않은 양가 하객들이 참석한 조촐한 결혼식이었다. 43세라는 늦은 나이지만 사랑하는 그 친구의 결혼을 더욱더 빛내주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지난밤 술자리 외에는 이렇다 할 선물이나 이벤트를 준비하지 못하고 지금도 술이 덜 깬 볼품없는 하객이라는 사실이 후회되었다. 축가도 없이 그냥 평범하게 결혼식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문득 이 순간이 아니면 친구에게 축하를 전할 기회가 없다는 생각에 충동적으로 “잠시 결혼식 진행을 멈춰 주세요”라고 크게 소리쳤다. 그리고 놀란 하객들에게 두 손을 들어 죄송함을 전하고 무대 앞으로 걸어가 단상에 올랐다.     

“안녕하세요? 저는 신랑의 고등학교 친구입니다. 이들이 비록 늦은 결혼이지만 축가도 없이 이렇게 끝낼 수는 없습니다. 제가 노래를 잘하지는 못하지만 씩씩하게 축가 한 곡 부르겠습니다. 친구야, 결혼 축하한다!”     

그리고 나는 결혼식 축가로 무반주 ‘사노라면’을 목이 터져라 힘차게 불렀다. 결혼식이 끝나자, 사람들이 밀려 나온다. 많은 분이 결혼 축가가 감동적이고 인상 깊었다는 격려와 함께 최고의 결혼식이라고들 호응해 주었다.     


결혼식 뒤풀이를 끝내고 피곤한 몸으로 다시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나는 바로 잠들었다. 버스 안에서 한참을 자는데 그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지금 일본행 신혼여행 출발을 위해 탑승 직전에 전화했다고 한다. 신랑 신부가 함께 전화를 바꿔가며 내게 감사를 전했다. 무턱대고 투박하게 불렀던 그 노래가 두 사람에게는 뜻깊은 축가였다고 한다. 소중하고 의미 있는 결혼식이 된 것 같다. 친구 결혼식을 오가며 너무 무리해서인지 나는 몸살을 하며 힘든 한 주를 보냈다. 오랜만에 고교 시절의 우정을 친구의 결혼식에서 극적으로 나눈 셈이었다. 지금 그들은 예쁜 딸을 낳아 행복하게 살고 있다.     


얼마 후 고등학교 친구들과의 모임 이름을 바꿨다는 소식을 받았다. ‘사노라면’이라고…. 내가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만장일치로 결정했다고 한다. 전인권의 “사노라면”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크나큰 여백이었다. 즉석에서 부른 노래 한 곡이 오래도록 친구들 사이에서 회자한다.     


2012년 12월, 임원 승진을 축하하는 난초 화분 중에 특이한 하나가 사무실로 배달됐다.

“축 상무 승진, 사노라면!”     

그 축하 리본과 함께 오랫동안 내 사무실 책상 위에 당당히 올려져 있었다. 바쁜 업무에도 가끔 그 화분을 물끄러미 쳐다볼 때가 있다. 아득한 학창 시절의 추억이 떠오른다.

잠시 나는 나비가 되는 다른 꿈을 꾼다.



(친구 정수의 쾌유를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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