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그리웠어요, 새언니.
기분 좋은 향기가 나요, 수진언니.
오빠가 결혼하고 싶다는 여자를
처음 내게 보여준 그 겨울 저녁.
서울 찬 거리를
난 그녀의 팔짱을 나도 모르게 낀 채로
걷고 있었다.
바람이 그녀를 스쳐 꽃향기가 묻을 때마다
그녀는 나를 옥주씨하고 다정히 불렀다.
나를 옥주씨라고 불러주는 처음 사람이었다.
그것도 사각거리는 목소리로
내 이름을 사과처럼 불러주니
촌스럽기만하던 내 이름이
조금씩 빨갛게 예뻐지는 것 같았다.
오빠가 사랑하는 여자란다.
고집세고 주장강하고 크고 단단한 오빠에게
사랑하는 여자라니.
내 앞에선 쑥쓰러워 티셔츠하나 못 갈아입는
사람에게 사랑하는 여자가 생겼다고?
어쨌거나 한편으론 참 다행이었다.
옥주씨, 오빠는 참 다정해요.
나는 오빠 결혼을 성사시켰다.
아빠엄마는 내 말이라면 대부분 찬성이었다.
아빠엄마가 돌아가시면 저와 제 신랑,
오빠와 새언니만 남는데
그 새언니는 내 마음과 잘 맞았으면 좋겠어요.
수진언니가 바로 그 사람이예요.
아빠는 우리집에 처음 인사하러 온 언니에게
세가지 질문을 하고 싶다고 했다.
첫번째는 몸과 마음이 아픈 곳은 없는가.
두번째는 가족의 범위가 어디까지라고 생각하는가.
세번째는 아빠자신이 건넨 이 손이 어떤 의미인가.
수진언니는 건강했고
대가족으로 자라서 생각하는 가족의 범위가
아빠의 모범답안에 딱 맞았고
세번째 질문에 대한 언니의 답에
아빠는 엄마에게 이제 밥상을 들여와도 된다고
기쁘게 말하셨다.
아빠가 건넨 그 손을 바라보더니
언니는 가까이 다가와 두 손으로 꼭 잡아드렸다.
이렇게 잡아드리고 싶어요, 아버님.
결혼식 날,
나는 언니의 부모님께 마음을 담아
편지를 썼다.
그들이 행진할 때 나는 부모님께 다가가
편지를 전해드리고 온 힘을 다해 안아드렸다.
우리는 언니를 많이 사랑하고 있어요.
몇해 지나 아빠가 돌아가셨다.
언니와 오빠는 장례식장으로 왔다.
나는 와락 무너진 마음으로
새언니에게 가서 안겨 울고 싶었지만
정말 이상했다.
내 걸음이 자꾸 뒤로 걸어졌다.
언니, 우리 어떻게 해......
너무 슬프면 웃음이 나듯,
너무 기대고 싶으면 뒷걸음이 된다는 걸 알았다.
언니가 와락 나를 껴안았다.
아가씨, 우리 어떻게 해......
그 날,
비로소 우린 가족이 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새언니가
아가씨, 힘내.
라는 문장이 아니라
나와 똑같이
아가씨, 우리 어떻게 해.
라고 말하는 순간.
그리고 작년 그들은 한국을 떠났다.
그 곳에서 새언니와 오빠는 아빠의 제사 때
쓸 황태포 몇 마리도 이민가방에 넣어서 갔다.
나를 아가씨라고 불러 주는 사람이 나타났다.
우리는 처음엔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억겁의 인연으로 가족이 된 사람.
우리 엄마를 어머니라 부르는 사람.
우리 오빠를 믿고 한 인생을 살기로
다짐한 한 사람.
나를 닮은 두 아들을 낳아 준 사람.
나는 오늘,
그녀를 만나러 14시간의 긴 비행을 한다.
나는 새언니를 만나 첫 인사를 전할 것이다.
많이 그리웠어요, 새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