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hnokjoo Dec 26. 2016

한 병의 사랑

커다란 사랑은 작은 들기름 안에 들어있었다.

들기름 한병에 감동을 받은 것이,

내 나이 34살때이다.


자연분만으로 두 아이를 낳고

다른 사람들의 연애이야기가 시시해지고

새로 태어나는 삶을, 생이 끝나는 죽음들을

여러번 겪고 나서,

들꽃을 몇번 뒤돌아보게 되던 그 즈음에

나는 들기름에 얼마나 많은 정성이 들어가는

줄을 알게 되었다.


들깨를 심어 들깨송이가 누렇게 영글어갈 때

조심스레 베어 좋은 가을 볕에 말리고

들깨 작은 낱알하나도 소중히 털어

보석처럼 모아

방앗간에서 들깨를 짜내어

그 과정을 보며 지키고 섰다가

얼마 되지 않은 들기름을

빈 소주병에 담으면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만 나눠주는

들기름이 된다.


그 과정은,

어렵게 아이를 갖고 열달 내내

뱃속에 품었다가 힘들게 낳는 과정처럼

더딘 기다림과 비슷하다는 것을

내 나이 34에 알게 되었다.


그런 들기름을 나의 시어머니는

꼭 두병씩 챙겨주신다.

나는 예전에 그 들기름을 무심히 받아들고 와서는

나물무칠 때 듬뿍, 게국지를 끓일 때 듬뿍,

아이들 계란밥을 비빌 때 듬뿍 넣곤 했다.


그렇지만 한 해 전부터

들기름 향이 몇년만에 피는 꽃향기처럼

그윽하다는 것을,

맑은 노란빛의 들기름이 어머니의 미소처럼

포근하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야

들기름을 넣어야 할 때마다

나도 모를 감동에 젖어

두 아이의 코에 들기름을 갖다대면서


이 향이 사랑의 냄새야.

어때? 고숩고 따뜻하지?


한다.

사랑은 만지지도 보이지도 않지만

들기름의 향으로 맡을 수 있다는 것이

나는 마냥 행복했다.

그래서 나는 들기름을 양념칸에 넣어 놓지 않고

보기에 좋은 곳에 올려두고

쓸쓸함이 느껴지는 시간에 바라보고

냄새맡는다.

바람의 시간이,

햇빛의 온도가,

들깨를 터는 소리가,

시어머니의 정성이

한병의 들기름안에 들어있는 것.

그것을 알게 되는

서른 중반의 내 삶이

그윽하게 영글어가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새언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