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 한쪽어 접어둔 후리스를 들쳐 입는다.
침대 한쪽에 접어둔 후리스를 들쳐 입는다. 30도를 웃도는 최고기온을 연신 기록하는 초여름과 사뭇 어울리지 않는 후리스. 여름 잠옷을 입어 쌀랑한가 보다. 긴팔 잠옷으로 갈아입고 누워도 어디서부터인지 모르는 덜덜대는 한기가 느껴져 이내 다시 후리스를 집는다. 요즘 먹는 것이 부실해서 인지 싶다. 저녁 두둑이 챙겨 먹고 누워 이불을 코 밑까지 끌어당긴다. 덥다고 땀이 삐질삐질 흐르는 탓에 금세 이불을 걷어찬다. 이불을 걷어냄과 동시에 다시 찾아오는 덜덜거림. 덜덜거림을 좀 더 편하게 진정시키고자 얇은 티셔츠, 난방, 맨투맨, 이불들을 감싸도 후리스만 못하다. 때아닌 후리스에 옅지만 꼬질한 땀내가 방에 차오르지만 싫지 않다.
후리스의 지퍼를 턱 끝까지 잠그고 그 끝에 코를 푹 박고 나서야 덜덜거림이 잦아든다. 따뜻해진다. 잠을 청하려 이리 저리 돌아다 보니 며칠째 잠드는 자리는 침대 왼쪽 끝 따리다. 침대 머리와 왼쪽이 방 모서리에 맞닿아 있어 왼쪽 어깨가 벽에 닿아 있고 너른 오른편엔 기다란 베개가 길게 누워 오른편 있으나 마나 한 무게를 채운다. 양팔 반듯하게 벽과 베개 사이에 자리 잡고 나서야 제 자리를 찾은 양 완전히 편안하다. 이윽고 자세를 고쳐 등은 벽에, 오른편의 베 개를 끌어안으며 잠에 든다. 새벽녘, 결린 어깨를 붙잡곤 베개를 밀어내고 침대 가운데로 이불을 감싸 안으며 웅크리고 들어간다. 하지만 왼쪽은 벽에, 오른쪽은 둘둘말아진 이불 틈바구니에서 잠이 깰 때가 가장 가장 좋아하는 포근한 아침이다.
A와 꼭 붙어 잤다. 혼자 빙그르르 굴러도 한 바퀴를 채 못 구르는 좁은 슈퍼싱글 침대에서 같이 자려면 침대의 한쪽 이 벽과 붙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주로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왼쪽에, 땀 많은 A는 창가와 가까운 오른쪽 자리에 눕는다. 각자 천장 보고 누워 낄낄거리며 유튜브를 본다. 살이 맞닿아 있는 따뜻함이 좋아 오른쪽 팔을 소의 어깨에 기대고 완 쪽 팔은 찹찹한 벽에 대어 따뜻하고 시원함 사이의 어느 한 지점에 체온을 맞춘다. 눈이 감기고 원래 보던 유튜브가 아닌 영상이 자동 재생될 즈음에 휴대폰이 툭 하고 A의 어깨로 떨어진다. A는 푸시시 웃으며 어깨의 휴대폰을 들어 충전선을 꼽는다. 팔이 자유로워지면 돌아누워 땀 많은 A의 어깨에 코를 파묻고, 기다란 A의 팔을 감싸 안고 잠든다.
원체 땀 많은 A와 꼭 붙어 있노라면 우리 둘 사이엔 송골송골 땀이 맺힌다. 그 땀을 장난스럽게 상대의 몸에 닦는다. 웹서핑하다 풉 거리면 뭔가 싶어 머리통을 들이미는 통에 꼭 왜 웃었는지 설명해야 한다. ‘내일의 일정'을 주제로 A는 최대한 정적인, 나는 최대한 동적인 활동을 제안하며 아웅다웅 내일의 조각을 맞춘다. 주말에도 일을 하는 A가 징징거리면 주말 동안 푹 쉬는 나는 얼굴을 찡긋찡긋 구기며 놀려댄다. 매일 운동하는 내가 잔잔한 근육통에 잠 못 들고 낑낑대면 A가 꾹꾹이를 한다. 따뜻한 손으로 온열 마사지를 받으면 만족하고 이내 잠든다. 잠들고 어딘가 간지러워 정신이 들면 A가 자기 내키는 대로 침 묻히며 입술을 여기저기 문댄다. 입 삐죽 한번 내밀곤 그러려니 하고 다시 잠든다.
이제 A 대신 A‘가 밤마다 찾아온다. 땀 많고 따뜻했던 A와 달리 A’는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매사 징징거리던 A 와 다르게 A‘는 적막하다. A와 A’의 차이가 너무 크게 와닿아서 일까. 시려서 발가락부터 움츠리고 있자면 가슴이 답답하다. 탕! 탕! 가슴을 치다보면 덜덜거린다. 춥다. 침대 한쪽에 접어둔 후리스를 들쳐 입는다. 이내 온기가 돌고 후리스 끝에 파묻은 코로 땀내가 맡아지면은 벽과 베개 사이에 반듯하게 누운 채 잠에 겨우 든다. 시린 그리움. 후리스는 시린 A'를 밀어내기 위한 A다.
한여름이 오기 전에 후리스 그만 입고 싶다. A와 다시 닿고 싶은 것인지 A던 A'던 모조리 쫓아 내고 싶은 것인지 모를 마음에 시린 초여름 밤을 겨우 흘려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