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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

익숙한 것들의 사라짐

by AHN SIHYO

한 동네에 오래 살다보면 하나하나 변하지 않고 있는 것들에 익숙해집니다.


이 곳에 가면 슈퍼가 있고

이 곳에 가면 정육점이

이 곳에 가면 과일 가게가

이 곳에 가면 빵집이

이 곳에 가면 생선 가게가

이런 식으로 머릿 속에 지도가 그려지죠.


익숙한 공간에서 달라지는 것은

나 그리고 그 공간을 지키는 분들이죠.

나이를 들면서 달라지고

세상을 살다보면 달라지고요.


익숙한 공간에서 달라지는 것도 있습니다.

인테리어 가게가 반 줄어들고 카페가 생겼고

폰 가게가 생기고

생활용품 마트도 생겼고요.

반찬가게도 생겼어요.


그리고 오래 그 자리를 지키던 공간이 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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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이 동네에 이사 오기 전부터 있었고

엊그제까지 있던 둘리문방구가 문을 닫았습니다.


22년 넘게 있던 곳인데...


어느 날 갑자기 폐업소식이 들렸고

어느 날 물건들을 싸게 판다는 포스터가 붙었고

사람들은 몰려들었죠.


제가 어릴 때 보다 지금 확실히 초등학생 인구가 줄었고 이 주변에 어린이가 정말 많이 줄어서 문방구를 갈 일이 없어요.


그 때 어린이였던 우리는 회사 근처의 오피스디포를 찾아가고

그 때도 아빠였던 우리 아빠들은 이젠 문방구 가서 복사하고 팩스 보낼 일이 없어졌죠.


그렇게 하나 둘 사라집니다.

어떤 가게가 들어오게 될까요?


익숙한 것들이 사라지면 흔적이라도 남으면 좋겠는데

그 흔적은 내 머릿 속에만 있으니까 더 아쉽습니다.


28.11.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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