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파랑'을 읽고서
예술이 주는 큰 재미 중 하나는 스스로의 시야를 확인하는 것에 있다. 특히 SF는 현실을 한 뼘 이내로 이격, 낯선 세계를 비추는 동시에 독자의 현재 세계관부터 허용되는 변화의 범주까지 시험한다. 중요한 것은 확장성이다. 분명 처음 한 발짝 떨어졌으나 영겁의 시간을 넘나들 수 있고, 빛이나 소리가 아스라이 느껴지는 곳까지 갈 수 있다.
“불행한 미래를 ‘상상’하기 때문에 불행을 피할 수 있다”(천선란, 천 개의 파랑 중에서) 작가의 세계관이자 하고 싶었던 말이 투영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상상이란 그저 아득히 멀리 생각으로써 나아가게 만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결과를 만든다. 그럴 때 의미가 있다. 현재에 영향을 줘 미래를 바꾸는 것이다. 앞과 뒤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다. 상상을 통해 처음으로 도착한 먼 곳에서 지금 가까이에 있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도 있다. 이때 변화가 시작된다. 결국엔 경계를 흐릿하게 만드는 상상이 결과를 만든다.
“경계를 만드는 것이 경찰과 이민국의 업무라면 그것을 무마시키고 없애는 것은 예술가의 임무다”(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예술가의 상상(혹은 주장)이 더 많은 경계를 허물수록 작품이 보다 뛰어난 형식으로 기능하게 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SF는 아주 좋은 도구다. 소설이라는 층위에서 핵심적인 평가 지표는 중심 서사의 완성도와 흡인력 정도이겠으나, SF 장르를 전체 예술 차원으로 확대한다면 핵심적인 방법론을 통해 얼마나 많은(깊은) 경계에 대해 말하고 있는지도 작품의 가치를 논할 때 매우 중요한 요소로 여겨져야 한다.
‘천 개의 파랑’은 이야기의 맺음이 명확하고 각 문장의 목적이 뚜렷하다. 이야기는 얼기설기 짧은 호흡으로 쪼개져 있으나 실은 하나의 구심점을 향해 정확하고 맹렬하게 돌진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담담하게 정리된 문체의 완성도가 높아 흡인력이 좋다. 잘 읽힌다는 말을 천 개 정도로 다변화한 것처럼 그럴싸하게 써봤다.
다만 파랑을 고작 천 개로 표현하겠다는 일념만으로는 독자의 머리를 강타할 질문을 던지기에는 역부족이다. 물론 이것이 작가의 목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는 스스로 밝힌 바와 같이 진실된 이야기의 완성에 의의를 두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념은 작품의 한계를 규정한다. 작품을 통해 독자는 스스로 관심을 두고 있는 작은 지점에 대해 얼핏 알게 되겠지만, 자신의 관념을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는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단순한 일념을 길게 늘인 구절 모음집을 구태여 반복해 읽을 필요는 없다. 파편화된 현실 인식을 어렴풋이 모아 보기보다는 더 많은 경계를 한 번에 허물어주는 좋은 작품을 마주하는 편이 낫다. SF는, 장르는 이야기 보다 더 큰 개념이다. 서사의 얼개보다는 확장된 세계의 완결성이 더 중요하다. 이야기가 감당하지 못하는 세계가 등장할 때 비로소 작품의 완성이 수용자 몫이 되기 때문이다.
[Information]
제 목 | 천 개의 파랑
저 자 | 천선란
출 판 사 | 허블 (동아시아 출판사 SF 브랜드)
쪽 수 | 376p
편 집 | 조유나, 하명성 등
초 판 일 | 2020년 8월 10일 1쇄
발 행 일 | 2020년 8월 19일 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