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 Morning Routine-Writing 2024.06.27
“선 넘네?” 작금의 시대를 관통하는 말이다. 어딘가에 연결되고 싶은 많은 사람들은 기술을 토대로 서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무언가를 가르는 보이지 않는 선이 생겼고, 그 선을 넘은 자는 스타가 되거나 나락행 급행열차에 탑승한다.
성공과 실패의 단초가 되는 선. 그럼에도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그 미묘한 경계는 대체 무엇인가.
저지선. 넘어서는 안될 선이야 말로 넘어가고픈 욕망을 깊게 자극한다. 웃기고 싶어서, 유식해 보이려고, 쿨한척하느라,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결국 관심받고 싶어서다.
타인의 관심은 소속감과 밀접한 연관이 있을 것이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타인과 자신이 일정한 틀에 속해 있기를 기대한다. 각자의 허용치, 즉 저지선은 어쩌면 스스로가 속하고 싶은 유형 혹은 지향이겠다.
보이지 않는 선은 온라인을 통해 쉽게 연결되고, 커다란 평가의 기준 근거가 된다. 사회적 예민도가 높아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다. 이 정도까지 타인의 내밀한 면을 쉽게 알 수 있던 때가 있던가. 파편화된 판단 기준들이 충돌할 때면 응당 피곤함까지 몰려든다.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정말 다행이다. 그동안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이 그냥 사라졌다. 혹자는 세상이 지나치게 피로해지고 있다고 하겠으나, 사실 세계가 예민해지는 것이라기보단 더 많은 것을 보고, 알 수 있게 됐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스스로의 기준을 외부에게 평가받을 수 있는 세상이 열렸다. 나를 확장할 수 있는 기회다. 휩쓸리기도, 흔들리기도 할 테다. 그럼에도 대화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다만, 이 담론에 내가 그은 선을 말하자면 이 대화 장면은 항상 지성에 기반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여기는 자와 가치 기준을 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앞선 문장은 아마도 스스로에 대한 선언일 것이다. 반지성주의와 독선을 경계하자는 기준선. 세계의 대화에서 배제되고 싶지 않아서다.
침묵을 지키고 있더라도, 그 고요가 의견이 될 수 있도록 튼튼한 울타리를 세우겠다고 다짐해 본다. 대화를 원하는 이가 마음껏 넘나들 수 있지만, 바람에 쉬이 무너지지 않을 보이지 않는 경계가 되도록. 내가 좋은 이웃이 되도록.
“좋은 울타리가 좋은 이웃을 만든다” - 로버트 프로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