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3일
날씨: 구름 많음, 더웠다가 따뜻했다가.
기록자: 동그라미
난 최근에 본 영화 줄거리도 금세 잊는 편이라. 10-20년 전 노래, 광고, TV 프로그램을 방금 보고 온 것처럼 줄줄 말하는 뽈이 늘 신기했었는데,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네. 생각해보면 나는 늘 꽉 차있는 집에서 살았구나.
조용한 집이라고 하니 떠오른 곳이 하나 있다.
그건 4층에 위치한 60평이 넘는 넓은 아파트 한 채. 그럼 현재 우리집의 두 배보다도 더 크려나. 현관문에서 ㄱ자로 꺾어 들어가면 보이는 신발장에 항상 남성 구두와 운동화 몇 켤레가 제멋대로 놓여있다. 긴 복도 좌측에는 작지 않은 방 두 개와 화장실 하나, 우측에는 커다란 TV와 안마의자가 있는 거실, 거의 ㅁ자를 이루는 싱크대가 딸린 부엌이 있다. 언제 한 번 들어가 보니 복도 끝 문으로는 두 개의 안방과 커다란 욕조가 있는 욕실이 이어진다. 전체적으로 20년 전쯤 유행했던 체리색 갈매기 몰딩과 가구가 집안 곳곳에 놓인 액자, 그림, 상패, 수석, 조명, 장식 조형물과 함께 고풍스런 분위기를 자아내는 집이다.
이곳은 나의 가장 가까운 친구 K네다. 이 집에 처음 들어와 본 것은 대학교 2학년이 되던 겨울이었다. 당시 나는 너무 가난했고, K는 휴학하고 집에서 아픈 어머니를 간병하고 있었다. 나는 K에게 미술 수업 관심 없냐 물었고 K는 흔쾌히 나를 선생님으로 받아주었다. 기억난다. 오랫동안 막역한 사이로 지냈지만, 남자사람 친구네에 처음 방문하던 날 꽤 떨렸던 마음. 당시 K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척했는데, '남녀 칠 세 부동석'을 들으며 자란 나는 마치 지뢰를 피하는 군인 마냥 내 마음속 '허락된' 구역만을 밟았다. 그런 나를 읽으셨던 건지, 작은 방을 쓰시던 가사도우미 아주머니는 날 예뻐하는 얼굴을 숨기지 않으시고 매번 큰 접시에 사과와 배를 한가득 깎아 간식으로 내주셨다.
K가 이젤에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면 연필이 종이 위를 스치는 슥삭 소리 외에는- 창 밖에서 들려온 우는 새소리 조금 말고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조용한 공기. 책벌레 K가 선별해 꽂아놓은 가지런한 책장. 작은 액자에 담긴 네 가족사진들. 햇빛에 비치는 먼지의 일렁임. 겨우 신발장과 맞은편 작은 방, 바로 옆 화장실이 그리는 삼각형 외에는 함부로 갈 생각을 않았던 나는 K의 이젤 옆에 앉아 생각했다. 복도 너머의 보이지 않는 공간들과 커다란 집의 고요함에 대해.
거의 10년이 지난 지금. 이제 이 집에는 세 남자만 산다. 유학생이 된 K, 지방으로 회사를 다니는 그의 동생이 간헐적으로 다녀가는 이 곳에 아저씨 역시도 하루 중 그리 많은 시간을 머무르지 않으신다. 부엌 대리석 싱크대 위에는 그때그때 밖에서 사 온 음식이 담겼던 플라스틱 용기, 비닐이 쌓인다. 새로운 가사도우미 아주머니가 일주일에 한 번 드넓은 집안 곳곳을 청소하고 가신다. 깨끗하고 짐도 별로 없는 이 집은 고요가 흐른다. 오직 일 년 내내 전면 창이 활짝 열린 베란다에서, 아저씨의 무수한 다육 식물들만이 화분 위에 주저앉아 조용히 이 집을 지키고 있다.
그리고 나는, 이 집에 자주 드나들게 되었다. K와 나는 요즘 공동 프로젝트를 위해 이 집을 팀 사무실처럼 쓰는 중이다. 독일 생활 이후 콘센트가 있는 카페를 전전하며 장시간 일하는 게 너무 비싸고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도 있고, 결정적으로 코로나 19로 인해 사람이 몰리는 곳을 피하게 된 것이다. 자연스레 우리는 장시간 비어있는 K네 집을 조금 다르게 사용해보기로 했다. 여전히 내 머릿속을 떠다니는 남녀 칠 세 부동석과 갖가지 예의범절('친구 집이어도 빈 손으로 가지 마라', '침대 위에 앉는 거 아니다', '저녁식사는 반드시 거절하고 귀가해야 한다' 등), 예비-시댁에 대한 예우 등등은 K가 주는 확신에 힘입어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좀더 유연하게 생각하고 싶었다.
그러자 '남녀 사이 온갖 불온하고 문란한 일이 발생할 수 있는' 금기의 공간은 금세 편하고 안락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실험실로 탈바꿈했다. 어쩌면 30년간의 싸움. 여기서 우리는 꽃샘추위를 피하고, 밥과 간식을 먹고, 작전회의를 하고, 계획표를 짜고, 글을 쓰고, 커피와 주스를 여러 번 가져와 마시고, 녹음과 영상편집을 하고, 메일을 쓰고, 독일과 인도에 흩어져 있는 친구들과 영상통화를 하고, 작은 성취에 포옹하며 기뻐한다. 늦게까지 일을 하다 보면 종종 귀가하신 아저씨를 마주치는 날도 있는데 아저씨는 이 고요한 공간에 K와 내가 내는 잡음들을 무척 반가워해주신다. 엄마에게서 오는 전화는 여전히 어물쩡 "밖"이라고 둘러대긴 하지만, 나는 여기에서 안전하게 일하다가 우리집에 간다. 내가 집이라고 여기는 장소들은 그렇게 자꾸자꾸 확장중이다.
그나저나 적다 보니 깨닫는다. 내가 이 구역의 적당한 소음이구만.
마음에 드네.
PS. 나와 K의 공동프로젝트가 궁금하다면,
바이로이트 기후숲 공식 홈페이지(영어/독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