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뭐라고 해야할 지 당최 모르겠는걸?
2020년 5월 02일
날씨 : 흐림
기록자 : 뽈
미리 말해두자면 이 글은 많은 게 없을 예정이다.
뭐가 없을 예정이냐면 그 어떤 재미도 감동도 유우머도 유익하거나 무익한 정보도 그리고 두서도 없을 예정이다. 왜냐하면 지금 나는 그 어떤 재미도 감동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이고 사실 그러한 감정들을 느끼고 말고 여부와 상관없이 타고 나기를 유우-머러스한 휴우-먼임에도 오늘은 유우머를 뽐낼 기분이 못 되며 또 유익한 혹은 무익한 정보를 받아들이거나 전달할 사정도 못 되고 평소처럼 글의 모양새를 두서 있는 척 포장할 능력도 바닥났기 때문이다. 앞에서 소리 이야기들을 했으니 나도 그냥 소리 관련한 잡담이나 떠들다 마칠 생각이다. 잡담이라서 사진도 없을 예정이고.
먼저 나는 동시에 두 가지 이상의 일을 하기 어려워하는 사람임을 밝힌다. 음악을 들으며 공부하거나 운동하거나 글을 쓰지 못하고 텔레비전을 보면서 밥을 먹지 못하고 대화를 자연스레 나누며 칵테일을 만들지 못하고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빨래를 개지 못한다. 30분 분량의 팟캐스트 내용을 이해하면서 빨래도 개려면, 일단 30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에피소드를 듣는 데 온전히 열중한 뒤 15분을 추가해서 빨래를 개야 한다. 말인즉 뭘 하든 남들보다 시간이 더 걸린다. 대수롭지 않게 보일지 모르나 성미가 급한 내겐 엄중한 사안이다. 고질적인 스트레스 요인이기도 하고. 언젠가 ‘이토록 멀티플레이가 안 되는 나, 비정상인가요?’라는 안건을 두고 원인을 자체 분석해본 결과 '소리에 민감해서'라는 결론이 나왔다. 과학적인 분석은 당연히 아니고.
어쨌든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은 맞다. 일행들이 쉬이 알아채지 못하는 작은 소리나 배경으로만 남아야 할 소리까지도 유난히 잘 듣고, 잘 사로잡힌다. 아주 어릴 때부터 그랬다. 어느 정도는 생득적이겠지만, 어릴 적 홀로 놓인 시간의 절대량이 많았기에 그런 걸까 하는 생각도 든다. 사정상 나는 집에서든 학교에서든 도장에서든 홀로 놓인 때가 많았고 대개 누군가를 기다려야 하는 처지였으며 기다리는 일은 늘 듣는 일과 관계가 있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와 다가오고 멀어지는 소리, 신발 종류와 걸음걸이에 따라 다른 발소리의 경중과 높낮이 정도, 왁자한 떼가 모였다가 개별로 흩어지는 말소리, 책걸상 끄는 소리, 학교 종이 울리기 직전 낮고 소소하고 짧게 떨어지는 틱- 소리, 아이들을 싣고 돌아온 도장의 차 문이 열리는 소리와 도장 옆 글쓰기 교실 원장 선생님이 수업을 시작할 때마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반복하는 인사말과 아래층 피아노학원의 누군가가 연습하는 <고양이 춤> 같은 것들, 을 들었다. 그리고 그들 중 몇몇을 단서 삼아 내 기다림의 종료 시점을 유추하곤 했다.
일과의 상당 부분이 기다림인데 솔직히 기다림이란 게 유쾌한 일도 아니고 퍽 지루한지라 나는 귀를 간질이는 이런저런 소리에 기꺼이 붙들렸고 그 소리들을 블록으로 만들어다가 시간의 빈 곳을 차곡차곡 채우는 일에 골몰했다. 꽤 즐겁고 효과적인 게임이었다. 공간이 채워지는 만큼 기다림의 시간은 빠르게 소진됐다. 다만 점점 고요의 시간을 홀로 견디기 두려워하는 부작용이 생겼고, 때문에 더 많은 소리가 필요해져서 나중에는 정말이지 온갖 소리, 그러니까 거리에 흐르는 가요와 TV 드라마 오프닝 곡과 예능 프로그램 엔딩곡, 라디오 광고 CM송과 카피, 디제이 멘트 따위까지 닥치는 대로 끌어모았다. 거의 희미해지긴 했어도, 흘러간 시대의 특정한 부분들을 아직 비교적 소상히 기억하는 까닭은 아마도 그 시절의 블록들 덕인 듯하다. 스치는 소리를 꽉 쥐고 매어두려 안간힘 썼던 나의 어린 날들이 남긴 유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일과 중 기다림의 비율이 축소되고 대신 해야 할 일이 늘어나자 상황은 역전되었다. 소리에 민감하므로 나는 이제 소리를 최대한 제거해야만 했다. 주어진 시간 내에 할 일을 끝내려면 어린 날처럼 그것들에 사로잡힐 여유가 없었다. 반드시 요구되는 소리만을 취사선택하고 나머지는 음소거로 처리하는 날들이 조금씩, 갈수록 확실히 늘었다. 특히 이십 대 후반부에 접어들면서부터 소리에 한층 더 둔감해졌다. 반대로 고요와 가까워졌다. 심지어 고요 속에서 평안을 찾는 날마저 생겼으니. 소리를 있는 대로 쓸어다 꽉꽉 눌러 담는 것으로 무료와 불안을 이기던 과거의 나와 침묵의 진공 상태를 편안해하는 현재의 나 사이 격차에 내심 어색함을 느끼는 일이 때때로 있다.
아무튼 대-코로나 시대를 정통으로 맞은 지난 3월부터 나는 매우 오랜만에, 기나긴 기다림 속에 홀로 놓이게 됐다. 기다림의 대상이 예전처럼 구체성을 띤 존재도 아니고 종료에의 기약도 없으니 더욱 영겁으로 느껴져서, 예전처럼 소리를 붙들어 매어두는 날을 간헐적으로 갖곤 한다.
아홉 살과 열다섯 살 사이에 만들었던 블록들을 서른이 되어 들춰본다. 블록 몇 개를 꺼내 슬몃 귀에 가져다 댄다. 안에 담긴 지난날의 노래들을 꺼내어 종일 듣거나 이제는 잔상으로만 남은 소리의 기억을 더듬더듬 톺는다. 효과는 예나 지금이나 탁월해서 시간이 계곡물 흐르듯 간다.
그러고 나선 블록 위에 지금 이곳의 소리, 나뭇가지에 걸터앉아 쪼롱이는 새들 소리와 옆집 사람들 웃음소리와 스피커폰 너머 들리는 남의 엄마 목소리와 그 목소리를 타고 흐르는 낯선 언어와 서툰 기타 소리와 자동차들 지나는 소리와 때때로 요란히 울리는 사이렌 소리를 조심스레 덧쌓는다. 덧쌓아서 아홉 살의 나에게 되돌려준다.
이런 것들도, 이런 날들도 먼 훗날엔 유산이 되겠니.
돌려주며 물어볼 걸 그랬나. 아니, 뭐하러. 이미 답을 아는 것 같기도 하고. 답이 없고 모르겠는 건 이 글이다.
뭘 쓴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