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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당동붓다 Jul 16. 2020

친구 같은 엄마

우리나라에는 500명 미만의 직원이 있는 회사에 소속된 직원들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무료로 심리상담을 받을 수 있는 EAP 프로그램이라는 좋은 제도가 있다. 몇 년 전, 나를 포함한 모든 직원들이 심리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 모든 스태프들이 뿡갈로라는 카페와 바, 그리고 게스트하우스를 함께 만들고 운영했는데, 많은 손님들을 상대하는 서비스직이니, 사람으로부터의 스트레스가 클 것 같아 진행했다. 상담은 독립된 공간에서 비밀로 진행되므로 어떤 내용이 오갔는지는 모르지만, 그때 공통적으로 모두가 한 이야기가 다들 엄마 이야기가 나왔을 때 울었다는 것이었다. 나 역시 1년간 심리상담을 받았는데, 주된 주제는 엄마와의 갈등이었다. 당시, 나의 결론은 내가 정신적으로 엄마에게 독립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상담 중에 아직까지 기억나는 선생님의 질문 하나가 있다. "아람 씨의 가족은 누구예요?"라는 질문이었다. "남편, 아이, 엄마, 아빠, 오빠"까지 하다가 시댁 식구들을 넣어야 할지 빼야 할지 뭐 그런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때 상담 선생님이 단호하게 이렇게 얘기했다. "아람 씨는 결혼했으니, 이제 아람 씨의 가족은, 아람 씨와 남편 그리고 딸 이렇게 셋이에요." 당시 나는 남편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엄마와 그런 기운을 느끼는 남편 사이에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당시, 선생님의 말이 아주 큰 힘이 되었다. 그건 사실, 엄마와 남편이 감내해야 할 문제이지, 내 문제가 아니라고. 나는 서로 마음이 다치면 공감해주고 위로해주면 되는 것이지, 그것을 해결할 수는 없다고. "나 때문에 발생한 관계니까 내가 해결해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반문하니, 내가 결혼했기 때문에 관계가 만들어지긴 했지만, 그 관계를 어떻게 맺어가야 할지는 당사자의 몫이라고 했다. 그 대답을 듣고 나서 나는 정말 편해졌다. 사실, 내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었거니와 내가 해결할 필요가 없는 문제였다. 그 이후, 나는 엄마에게는 남편만 싸고도는 나쁜 년으로 지속적으로 질타를 받지만 뭐 크게 개의치 않는다. 나는 이제 나의 새로운 가족이 있으니까.


예전에도 말했다시피 우리 엄마는 내가 재벌 3세와 결혼하여, 일하지 않고 한강이 보이는 40평대 아파트에 살지 못하는 것 자체,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엄마의 꿈을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이 많았다. 엄마의 온 인생을 바쳐 나를 키웠으니, 엄마의 뜻대로 살았으면 하는 생각이 클 것이다. 게다가 나는 친구 같은 딸이니 무슨 일이 있을 때면 엄마는 나에게 고민을 상담하고, 어떤 해결을 바랄 때가 많다. 놀랍게도 비단 우리 엄마만 이러는 것이 아니다. 회사에서 상담을 진행하던 당시 친구들에게 엉엉 울었던 이유를 물어보니, 대부분 엄마가 힘들어해서 너무 힘들다. 엄마에게 도움이 되어야 하는데, 못 되어서 마음이 아프다. 뭐 그런 것들이었다. 대체 왜 그것을 아이가 고민해야 하는가.


아이를 키우다 보니, 엄마가 어떤 마음인지는 충분히 알겠다. 임신과 동시에 직장을 그만두었고, 나만 찾는 아이를 떼놓을 수도 없으니, 온 힘을 다해 아이를 키웠을 것이고, 그러다 보니 친구들과는 자연스럽게 멀어졌을 것이다. 그래서 엄마에게 딸은 나의 친구이자 대리인이고 가족이자 보호자이기도 하다. 그런데 온 힘을 다해 키워 놓으니, 지 혼자 큰 마냥 우쭐대고, 우쭐대는 것 같아 고민 좀 상담해보려고 하면 도망가기 일쑤다. 그렇다고 남편과 얘기 좀 해보려고 하면 짜증과 싸움으로 결론이 나기 마련이다. 결국 내 인생을 바쳐 이 가정 하나 잘 키워보자고 했는데, 나에게 남는 것이 하나도 없다.


여기까지가 엄마의 입장이고, 사실 자식의 입장은 다르다.


어렸을 때부터 엄마는 거대한 산이자, 바다고, 우주였다. 엄마는 다 잘될 거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엄마만 믿으라고 했다. 그러던 엄마가 내가 30대가 되자, 이제는 나에게 좀 기대겠다고 한다. 우리 집에 경제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는지, 엄마와 아빠 사이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알지도 못하게 하던 엄마가 내가 컸다는 이유만으로 갑자기 모든 문제를 꺼내어 너도 우리 가족이니 이제 함께 문제를 해결해나가자고 한다. 너는 친구 같은 딸이니,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문제는 너에게 얘기한다고, 내가 너의 기둥이 되어주었으니 이제 네가 나의 기둥이 되어달라고.


솔직히 말하면, 나는 부모들이 이렇게 태도를 돌변하는 것이 사실 엄청난 이기심이라고 생각한다. 이 세상 끝에서 나를 보호해줄 나의 마지막 끈이자 지지대는 바로 부모다. 그것이 나의 기반이자 자존감의 근원이다. 오히려 나이가 들어 세상과 싸우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그 기반만큼은 무너지지 않고 지켜줘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친구 같은 엄마란 말을 싫어한다. 나는 내 딸에게 영원히 엄마이고 싶다. 무슨 일이 생기면 달려가서 엉엉 울 수 있는 존재, 무슨 일이 있어도 나를 믿고 무한히 사랑할 수 있는 존재, 늘 기댈 수 있는 존재. 게다가 나에게 있어 친구는 내 친구들로 충분하다. 엄마는 엄마대로, 친구는 친구대로의 역할이 있다. 그러니, 아이를 키우면서 내 삶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설사 그러더라도, 그랬다고 믿어서는 안 된다. 희생하고 포기했다고 믿는 순간, 인간인 이상 보상을 바라게 된다. 


사람마다 지향하는 엄마의 상이 다르겠지만, 나는 단호히 말하건대 친구 같은 엄마는 되고 싶지 않다. 영원히 엄마만 되고 싶다.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무엇을 바라지 않고 영원히 주기만 하는 것. 죽고 못 산다는 남녀 간에도 영원히 이어지기 어려운 그 사랑이라는 것이 적어도 부모 자식 간에는 지켜져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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