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름나무 Nov 12. 2020

우리는 운명이에요!

눈으로 볼 수 있는 순수한 우정.  


1.


한 살 터울의 초등학생인 Joey와 Violet은 서로를 단짝 친구라고 칭한다. 둘은 늘 붙어 다녀서 보기만 해도 꼭 1+1 같다. 아휴 그렇게 재밌을까? 학원의 구석 어딘가에서 웃음소리가 세어 나온다면 의심할 여지도 없이 이 꼬맹이들이다. 어느 날엔 너네 친한 친구냐고 물었더니, 아이들은 상기된 목소리로 내게 설명했다. 자신들의 우정이 얼마나 운명적인지를.


"선생님, 우리는 운명이에요! 왜냐하면 저는 강아지를 키우는데 언니는 고양이를 키우거든요!"

"우리는 운명이에요. 그리고 생일이 하루 차이 나거든요!"


그래 맞아. 이제 막 두 자릿수 나이가 된 너희들의 우정에는 사소한 것도 운명이 될 수 있지. 아이들 얼굴엔 '우리는 친구가 될 수밖에 없었어요. 대박이죠 선생님?'이라고 쓰여있고 나는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와 너네 대박이다! 친할 수밖에 없겠네!"


둘은 또 1+1처럼 꼭 붙어서 키득거렸다.







2.


'아, 참 순수하다.'


나는 고양이를 키우는데 너는 강아지를 키우니까 우리는 친구가 될 수 있다니. 내 생일이 4월 2일인데 너의 생일이 4월 3일이니까 우리가 운명이라니.


문득 열세 살 때 같은 반 단짝 친구였던 S가 떠올랐다. 나에게도 별거 아닌 이유가 운명처럼 느껴져 우리 사이는 절대 갈라질 수 없다고 장담하던 그런 우정이 있었다. 우리도 Joey와 Violet처럼 1+1처럼 내내 붙어 다녔다. 나와 그 아이가 뭐가 그렇게 운명이었던 건지 지금 생각해보면 공통점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는데. S와 만들었던 재밌는 일이 한 가지 생각난다. 그 나이 때 여자아이들의 우정이란 꽤 보수적이어서 '너'와 '나'만 아는 무언가를 만들어내곤 하는데 우리에겐 그것이 이름 뒤에 '쓰'를 붙이는 거였다.


가령 이름이 미연이면 미연아,라고 부르는 게 아니라 미연쓰~ 하고 부르는 것이다.


서로의 이름 뒤에 그 한 글자를 붙여서 부르는 행위는 '그 누구도 우리 우정을 가를 수 없고 우리는 특별한 친구 사이다'라는 걸 자신 있게 드러내는 것이었다.


 

그 앳된 우정이 시간을 따라 성숙해지면 얼마나 좋았을까. 안타깝게도 나와 S의 사이는 오래가지 않았다. 중학생이 되고 다른 반이 되면서 우리는 멀어졌는데 정확히 어떤 이유였는지 기억도 안 난다. 그래도 그 당시에 나는 꽤 상실감이 커서 그 아이와 다시 친해지는 꿈을 종종 꾸곤 했다. 우리의 우정이 오래 지속될 줄 알았는데. 다시 한번 더 용기를 내서 다가갔으면 이야기가 달라졌을까? 나는 용기를 내지 못하고 꿈만 꿨고, 시간이 지나면서 S는 내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다.






3.


Joey와 Violet의 모습을 보니 나는 아이들의 운명론적(?) 우정이 조금 부럽기도 하다. 지금의 나를 생각하니 어쩐지 재고 또 재는 내 모습만 떠오르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하고.


얘들아, 선생님은 말이야. 이제는 친구를 사귈 때 그런 운명을 따지진 않거든. 어쩔 때는 계산을 해. 이 사람은 나와 잘 맞을까? 생각이나 가치관이 비슷할까? 물론 필요한 계산인데 아, 너네는 이게 무슨 말인지 잘 모를 수도 있겠다. 새로 만나는 사람들은 일단 경계를 하기도 해. 이제 나는 세상은 아름다운 곳이고 사람들은 본성이 착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거든. 가끔은 아주 친한 친구들도 내 할 일이 너무 바쁘거나 마음이 어긋날 때는 거리를 두기도 해. 너네만큼의 순수한 우정은 아마 너희라서 더 빛나는 걸 거야. 아! 그렇지만 너네가 서로를 대하는 마음만큼은 보고 배워야겠어. 그러니까 선생님의 친구들을 좀 더 순수하게 사랑해보려고.



친구들에게 무엇을 해볼까? 친구들의 메시지를 좀 더 아이답게 보내볼까?

만약에 입이 심심해서 과자가 먹고 싶다는 친구의 메시지를 받는다면 이렇게 답해야겠다.




나는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은데! 역시... 우리 우정 뽀레버.


매거진의 이전글 <댈러웨이 부인>을 읽기 시작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