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t oneself
몇 주전부터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읽기 시작해서 바로 오늘 다 읽었다. 얇은 책이라고 얕보았는데 그녀의 글이 단번에, 쉽게 읽히지 않아 나는 몇 장의 페이지를 공들여 읽어야만 했다. 그러나 내용만큼은 꽉 차서, 이 책이 얇은 책인지도 못 느낄 만큼 읽는 동안 참 좋았다.
버지니아 울프의 책을 읽고 영상도 찾아보며 나는 어느새 그녀와 거리가 가까워졌다. 그래서 그녀가 쓴 글을 읽고 있으면 런던의 거리를 타박타박 걸으며 사색하는 어느 멋진 여자가 상상이 된다. 나와 울프의 인연은 이 책으로 이어지는데 정확히는 이 책이라기보다는 천가방 덕분에 이어졌다.
몇 년 전 어느 날, 천가방(에코백)을 좋아하는 내 눈에 쏙 들어온 가방 하나가 있었으니 그 하얀 가방에는 어떤 무늬도 없이 어느 구절만 검은색으로 진하게 쓰여있었다. 나는 당연히 그 구절이 마음에 쏙 들었던 것이었고, 바로 그것은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에서 나오는 문장이었다.
No need to be anybody, but oneself.
오~ <자기만의 방>이라는 책에 나오는 문구라고? 너무 맘에 드는데? 작가가... 버지니아 울프? 이 책 읽어봐야겠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서 오늘, 이 문장이 어떤 의미인지 나는 깊이 알게 되었다.
이 책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바로 이 문장일 것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나 자신이 되라고. 페미니즘의 고전이라고 칭하는 이 작품을 읽으며 나는 페미니즘보다는 그저 자기 자신이 되는 길에 대해 곰곰이 생각을 했다. 울프가 살던 시대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시대는 너무나도 달라졌으니, 굳이 페미니즘으로 국한 지을 필요가 없다고도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나 자신이 되려면, 특히나 나 자신이 되어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자기만의 방'과 '연 500파운드'가 필요하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러니까 주변의 방해 없이 오롯이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공간과, 자신이 정말 원하는 일을 하며 벌어지는 돈(경제적 자유)말이다.
어찌 됐든 지금 시대는 여성도 얼마든지 공간과 경제적 자유를 얻을 수 있으니, 지금 나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으니 감사하기도 하고 다행이기도 하다. 거기다 더. 그러니까 더이상 아무런 탓도 하지 말자고.
몇 년 전, <자기만의 방>을 읽기도 전에 나는 이 구절이 쓰여있는 천가방을 사서 주구장창 매고 다녔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좀 더 자란 나는 어느새 이 책을 읽었고 그녀의 다른 책을 읽게 되었으며 영국의 그 시대적 배경과 역사를 알게 되었다. 작은 관심이 깊어져가는 모습은 참으로 재밌다.
여하튼 이 얇지만 깊은 책을 오늘에서야 덮으며, 나도 온전히 나 자신으로서 살아야겠다고 다시금 내 안에, 그리고 이 글에 되새겨본다.
나는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내일도, 언제나, 가장 나다운 모습이고 싶다. 내가 재밌게 몰입할 수 있는 일을 하며 돈을 벌면 너무 좋을 것 같다. 그런 자유를 쟁취하여 당당하게, 아주 멋지게 살아야겠다.
그나저나 대청소를 잠시 멈춘 내 방이 떠오른다. 나의 '자기만의 방'을 다시 정리하고 꾸며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