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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나무 Nov 17. 2020

A의 더블린  

번외,  더블린 여행 후에 A와 했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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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더블린 여행을 여행기로 남겨둔 기록이 있어 오랜만에 들추어보다 재미난 걸 발견했다. 바로 A와 서면 인터뷰를 했던 것. 나는 인터뷰이, A는 인터뷰어가 되어 기록했던 그 인터뷰를 번외로 남겨본다.  



1. 개인적으로 제 주변에 아일랜드를 가고 싶어 한 사람이 A가 처음이었어요. 전 영화를 보다가 아일랜드에 가고 싶었는데 A는 언제 처음으로 아일랜드에 가고 싶었나요?


대학교 2학년 때였던 것 같아요. 동아리 활동을 마치고 술자리에서 유럽여행을 다녀온 선배 앞자리에 앉게 됐어요. 그때 영국에 대해선 조금이나마 알고 있어서 빅벤과 런던아이를 들먹이며 아는 척을 했지만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얘기가 나오니까 할 말이 없어지더라고요. 그런 나라가 있다는 것만 알았지 어떤 곳인지 잘 몰랐거든요. 그때 처음 아일랜드에 관심을 갖게 된 것 같아요.




2. 진부하지만, 더블린의 첫인상은 어땠나요?


공항에서 숙소까지 오면서 느낀 더블린의 첫인상은 ‘어? 여기 뭔가 런던이랑 다르다’였습니다. 런던에 일주일 있으면서 제가 아무리 헤매고 다녀도 저한테 먼저 다가오는 사람은 없었거든요. 아니다, 한 명 있었네요. 어쨌든 더블린은 입국심사부터 너무 쿨했습니다. 사실 저는 런던 입국심사 과정에서 꽤나 애를 먹었거든요. 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더더욱 말할 것도 없어요. 먼저 도움이 필요한지 물어봐주고 식당을 추천해주고 사진을 찍어주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제 마음은 활짝 열려버렸어요. 런던에서는 뭔가 동떨어져서 혼자 여행하고 있는 느낌이 있었는데 더블린은 오히려 사람들이 저를 환영해주는 것 같았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무관심의 런던과는 다른 곳이라고 느꼈던 것 같습니다.




3. 캐리어 끌고, 배낭 메고 힘겹게 더블린에 도착했었죠. 윔블던에서 떠나 더블린 에어비앤비 숙소에 도착하기까지 제일 재밌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사실 짐을 짊어지고 이동하는 순간이 가장 재밌었던 것 같아요. 정말 팔은 빠질 것 같았지만요. 아마 혼자만 힘들었다면 짜증만 났을 거예요. 언니가 같이 힘들어서 좋았습니다! 배낭을 메고 허리가 굽은 모습도 웃겼고요. 서로 놀려대면서 놀림당하면서, 별 것 아닌 이동 시간을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종종 회자될 법한 추억으로 만든 것 같아요. 힘든데 이렇게 웃었던 적은 처음이었어요. 그 시간도 그립네요.





4. 기네스 생맥주를 처음 마셨을 때, 맛을 표현해본다면?

(A의 답변이 재밌을 거라 예상은 했지만 그녀가 서술한 것을 보라.)


하... 벌써 기네스의 맛을 잊어버리고 있다는 게 너무 아쉽네요. 지금 아무리 열심히 표현해봤자 부족할 거예요. 그래도 기억을 떠올려보자면, 일단 기네스를 따르는 순간부터 설명해야겠어요. 기네스를 잔에 따를 때는 처음부터 잔을 가득 채우지 않고 잔의 윗부분 3~4센티 정도를 남겨놓더라고요.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을 두고 기다려야 해요. 그럼 맥주 속 회오리와 기포들이 잔잔해지는데 그쯤 맥주 위에 거품을 올려줍니다. 같은 생맥주 꼭지에서 나오는데 아까는 맥주만 나오고 이번엔 거품이 나오는 건지 모르겠어요. 따르는 사람의 기술인 것 같아요. 그 맥주를 받아서 입에 대면 깜짝 놀랄 수밖에 없어요. 거품이 너무 쫀쫀하거든요. 이 쫀쫀함을 위해서 기네스를 받기까지 시간이 더 필요한지도 모르겠어요. 그런 다음 이제 입에서 떼서 거품을 관찰하기 시작해요. 맥주 거품은 팔이 빠지도록 열심히 친 머랭을 보는 것 같아요. 표면이 기포 없이 너무 부드러워 보여요. 그렇게 한동안 거품에 감탄을 하고 이번에는 쭈욱 들이켜요. 그럼 부드럽고 쫀쫀하고 크리미 한 거품을 지나 쌉싸름하면서 구수한 것 같기도 한 맥주가 목으로 꿀떡꿀떡 넘어갑니다. 맥주 맛도 맛이지만 저는 마실 때마다 거품에 반했습니다.




5. 짧았던 더블린 투어였지만 언제가 제일 좋았나요? 하나만 딱 꼽기 어렵지만 그래도 굳이 뽑아본다면? 개인적으로 저는 도착 첫날, 펍에 가서 처음으로 기네스를 마셨을 때입니다.


더블린에 도착한 첫날밤 침대에 누워 핸드폰 메모장에 하루를 기록하던 때가 좋았어요. 딱 기분 좋을 만큼의 알코올도 마셨고 배도 적당히 부르고, 은은한 조명과 포근한 침대가 마음을 차분하고 안정되게 해 줬거든요. 그렇게 편안한 상태에서 가장 많이 웃었고, 가장 마음이 따뜻했던 날을 되새기면서 혼자 흐뭇하게 실실 댔던 것 같아요.








6. 더블린에 다녀온 이후로, 아일랜드(혹은 더블린)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저는 이상하게 irish blessing 혹은 아일랜드의 따뜻하고 소박한 마음들이 떠오릅니다.


저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느낀 아일랜드, 더블린도 블레싱과 굉장히 잘 어울리는 곳이었거든요. 여행기에 적었듯이 더블린을 떠올릴 때면 만났던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사실 만났다고 하기에는 너무 짧은 순간이어서 스쳤다고 해야 더 맞을지도 모르겠어요), 그 사람들이 저에게 해준 말과 행동들이 결국에는 블레싱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때는 몰랐는데 기념품샵에서 아일랜드가 블레싱의 나라라는 것을 알고 나니 이곳 사람들이 왜 이렇게 따뜻한지 조금은 알 것만 같았어요. 갑자기 더블린의 마음이 그리울 때면 적어놓은 글을 읽으면서 그때를 느끼곤 해요.





7. 사실 아일랜드, 라기보다는 더블린이라는 도시에 갔다 왔다 말하는 게 정확하다고 저는 생각해요. 더블린 여행이 굉장히 짧아서 아쉬웠는데 다음에 다시 아일랜드에 온다면 무엇을 하고 싶나요?


아이리쉬 커피를 꼭 마셔보고 싶습니다. 이번에 못 마셨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나는 어느 카페에 가서 메뉴에 Irish coffee가 있으면 A가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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