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leads me to solitariness.
정신없는 일주일을 보낸 후 찾아온 아침. 한 겨울 서리 같은 토요일 이 시간마다 나는 요즘 책 한 권을 야금야금 읽는다. laptop-free인 옆동네 카페에 가서 오트 플랫화이트 한 잔 시키고 앉아 책을 펴는 순간 드는 그 기분이란. 마치 한 주간 쌓인 피로가 녹는 느낌이다. 요즘 읽는 책은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몇 주 전, 서점에서 우연히 집어온 이 책은 릴케가 1903년부터 1908년까지 시인 지망생이었던, 프란츠 카푸스에게 보낸 릴케의 10개의 편지를 모은 것으로, 그에게 예술, 사랑, 인생, 고독 등에 대한 조언과 사색이 담겨 있는 편지집이다. 책을 구매했던 그날, 카페에 잠시 들러 첫 답장을 읽었을 때 나는 단번히 알았다. 릴케는 참 깊고 따뜻한 작가였다는 걸. 어떤 조언은 마음을 어루만지는데 릴케가 그랬다. 그 손길이 너무 따뜻해 매주 한 두 편씩 아껴 읽었던 요즘. 이 글을 쓰는 오늘 읽은 7번째 편지에서 작가는 고독과 사랑에 대해 썼다.
모든 것이 처음인 젊은이들은 아직 사랑하는 법을 모른다고. 그래서 배워야 한다고. 온 존재를 다해, 모든 힘을 다해, 두렵게 뛰는 가슴을 모아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하지만 어떤 일에서든 배움의 기간은 길고 고독한 시간이 필요한 법이며, 사랑도 마찬가지라고. 사랑은 긴 시간 동안, 그리고 삶이 깊어질 때까지 지속되는 것, 이라고. 사랑하는 자에게 사랑은, 더 깊어지는 고독이라고.
난 아직 사랑하는 방법을 잘 모르는 젊은이어서, 나라는 존재가 모든 힘을 다해서, 두려움도 뛰어넘어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말 모르겠어서, 그의 조언이 여전히 소화하기 어렵다.
그래서 일단 고독을 선택했다. 고독과 친해지면 사랑을 배울 수 있을 테니까. 아이러니하게도 고독은 혼자만의 시간이 아니었다. 나를 만든 사랑과 태초부터 함께했던 내면아이와의 만남이었다. 만남은 대화이자 작업. 아니다, 어쩌면 사랑이 나를 고독으로 이끌었던 것 같다. 처음으로 다가간 십자가. 첫 연애. 그제야 만난 가면을 벗은 진짜 나. 나를 지독히도 싫어하는 나. 미움. 무가치하다 여기는 시선. 수치심과 비난, 그리고 자조. 지독히 쓰라린 과거의 상처 거기서 피어난 슬픔과 분노. 억울함. 어떤 두려움. '사실 난...'으로 시작되는 진심. 톡 건들면 부러질 것 같은 여리고 약한 마음.
사랑은 내 것이 아닌 것처럼 여겼던 것들을 하나씩 천천히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부드러운 시선과 손짓으로 나의 모든 가능성을 믿고, 나의 연약을 견뎌주며. 사랑만이 나의 가장 초라하고 비참한 모습을 똑바로 보게 해 준다. 그리고 이 작업을 고독이라 부르는 시간을 통해 한다. 사랑은 일하고, 난 그저 그곳에 머물러 바라본다. 얼마나 깊고 아름다운 것이 거기서 나오는지도 모른 채.
나는 여전히, 아니 어쩌면 앞으로도 계속, 고독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바삐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춰서 고독으로 들어간다. (쉽지 않지만) 그러면 그곳에서 잠시 혹은 몇 시간 동안 황폐하기 짝이 없었던 내 내면에서 부드럽게 흐르는 사랑의 몸짓을 만난다. 딱 그만큼, 나를 미워하던 힘도, 나를 괴롭게 하던 생각도 사그라든다. 사랑은 일단 나에게 그렇게 말하는듯한다. 너를 먼저 사랑해 보라고.
릴케는 이 글을 마지막으로 7번째 편지를 끝맺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는 사랑을 배워야 하지만 결국 그걸 가능하게 하는 것도 사랑이 아닌가, 하고.
"나는 사랑이 당신의 기억 속에서 여전히 그렇게 강렬하게 남아 있는 이유가, 그 사랑이 당신이 처음으로 깊이 경험한 고독이자, 삶에서 처음으로 수행한 내면의 작업이었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