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처음 겪는 슬픔

날아가다

by 아름나무


0.

살아내느라 힘들었을, 그러나 많은 것을 남기고 간 그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게 무엇일까. 글을 써야겠다. 아무래도 이것밖에는 생각이 안난다.


1.
이제 곧 겨울이 끝나겠구나 싶었던 3월 어느 날. 한때 내가 그의 팬이었던 걸 알고 있던 친구로부터 그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며칠 동안은 실감이 나지 않더니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지기 시작한 건, 그의 영결식 영상을 본 이후였다.


그때는 영국에서 귀국을 2주 앞둔 시점이었다. 회사 인수인계와 이삿짐 정리 등으로 하루하루가 분주했고, 곧 이곳을 떠날 테니 여행일정도 무리해서 잡아둔 상태였고, 영결식을 봤던 날은 여행지에서의 마지막날 밤이었다. 런던집으로 돌아오는 그다음 날, 잉글랜드의 서쪽에서부터 런던까지 달리는 버스 안에서 난 장장 7시간을 내리 울었다. 그때 깨달았다.


상실은 슬픔의 문이 열리는 일이라는 걸, 그래서 눈물이 절로 쏟아지는 일이라는 걸.


상실은 그 문을 열고 어딘가로 나를 데려갔다. 과거. 그곳엔 나의 가수와 연결된 기억들이 있었다. 그를 열정적으로 좋아했던 학창시절, 그 오래된 시간이 갑자기 엊그제가 되어 생생해졌다.


사실 애도의 시작은 혼란스러웠다. '가족이나 친구도 아니고, 그냥 한때 네가 좋아했던 가수잖아. 왜 그렇게 슬퍼하는 거야?' 이성이 내게 물으면 마음은, 감성은 '한때 좋아했던 가수가 아닌가 봐. 내가 많이 좋아했나 봐. 나도 잘 모르겠어....' 하고 답했다. 그 둘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나 자신도 당황스러울 만큼 눈물은 계속 쏟아졌다.


슬픔이 나에게 휘성이 어떤 존재였는지, 그가 내게 어떤 영향을 줬는지를 다시 들여다보게 했다. 최휘성. 높을 최 빛날 휘 밝을 성. 오늘이 며칠인지는 잘 생각도 안 나면서 어렸을 때 알게 된 그의 이름뜻은 뭐 이렇게 저절로 떠오르는지. 그와 관련된 기억들은 머리가 아니라 몸에 새겨졌나, 아니 마음인가.


2.

런던으로 돌아온 그날부터,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일은 물론이고, 간단한 청소나 요리조차 손에 잡히지 않고 자꾸 눈물만 났다. 영상을 통해 오랜만에 마주하는 그의 모습, 노래할 때 나오는 휘성만의 제스처와 목소리. ‘맞아 우리 오빠 이랬어…’ 방에만 있으면 너무 슬퍼져서 부엌으로 나오면 식탁에 앉아 오열을 하던 나. 화들짝 놀란 채로 방에서 나와 나를 토닥이던 룸메.


‘괜찮아…슬프면 마음껏 울어.’


그는 내가 처음으로, 그것도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들 무렵에 열정적으로 좋아했던 가수였다.


앨범판매량이 중요해서 용돈으로 여러 장 샀던 그의 앨범들.
그저 휘성이 좋아서 그가 속해있는 소속사 다른 가수들 앨범까지.

방송보다 라디오 출연을 많이 해서 매일 저녁 라디오를 끼고 살았던 그때.

부모님 몰래 MP3와 CD플레이어를 사고, 처음으로 팬카페에 가입했던 거.

휘갈겨 쓴 듯, 멋진 그의 이름이 새겨진 빨간색 응원용 수건을 구매하고, 팬사인회에서 직접 받은 싸인.

활짝 웃었지만 낯을 가리는 듯했던 지금도 눈에 선한 표정. 그리고 너무 설렜던 어린 날의 나.


기억들이 눈물과 함께 쏟아져 나오면서 마음의 소리가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한때 좋아했던 가수가 아니구나...


내겐 가수 이상의 존재, 사느라 바빠 잊고 지냈던 내 첫사랑이…너무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이대로 머무르길

그대로 더 부르길

그대로 서투르지

부름 받고 싶은 기도 드림

...

<날아가다> 4집 수록곡, 작사 휘성




keyword
작가의 이전글사랑은 나를 고독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