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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이와 나누는 슬픔

커다란... 너무 커다란...

by 아름나무


1.

며칠 전 그가 있는 추모공원에 다녀온 A는 자꾸만 그가 눈에 밟혔다고 했다. 다녀오면 마음이 한결 나아지길 바랐는데. 붉게 물들어 있는 유골함을 두 눈으로 보니 더 실감이 났던 것이다. 그가 정말 숨을 거두고 하얀 재가 되었다는 게, 저 예쁜 함 속에 있다는 게, 말이 되지 않아서. '왜 여기 있는 거야? 여기 있으면 안 되는 사람인데...'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고, A는 말했다. 그 옆에 있던 다른 사람은 울지 말라고, 울면 그가 속상하다고, 하며 A를 달랬다.


"우리 가기 전에 인사하고 가요. 휘성 님께 또 오겠다고 해요."


A는 머뭇거렸다. 또 올 수 있을지 모르겠어서. 함부로 그 앞에서 또 오겠다고 말할 수가 없어서. 그래서 눈물 젖은 고마움과 미안함만 남기고 그곳을 나왔다.



2.

B가 그곳으로 가는 아침엔 보슬비가 조금씩 내렸다고 했다. 지하철 4호선 저 끝에 있는 진접역으로 가는 60여 분도 지루하기는커녕, 그를 만날 생각에 설렜다는 B. 역 앞에서 택시를 타고 15분만 가면 추모공원에 도착하니, 그는 가는 길도 이만하면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다. 공원으로 가는 초입은 너무 따뜻했다고 B는 덧붙였다. 산을 감싸고 있던 자욱한 안개가 너무 포근해서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고. 기사님께 카드를 건넬 때도 눈물이 멈추지 않아 당혹스러웠다고. 눈시울이 붉어진 채 B는 웃으며 말했다. B가 도착했을 때 즘엔 어느 다른 팬 한 분이 먼저 와서 조용히 앉아있었다.

사랑하는 가수를 잃어버린 자신의 슬픔은 쉽게 이해받지 못하는 감정이었다. 혼자서만 울고 그리워하던 B는 이름도 모르는 그 누군가, 자신과 똑같은 슬픔을 느끼는 그 사람을 보자마자 눈물이 더 났다. 조화. 그가 살아있을 때 좋아했던 음료와 간식. 액자에 담겨있는 그의 사진들. 이렇게 가슴 시린 동병상련이 어디 있을까.

그곳에서 팬들은 생애 처음으로 겪어보는 이 특별한 애도를, 그의 유골함 앞에서 함께 나누었다.


"언제부터 휘성 님 팬이셨어요?"
"저는..."

B는 그 뒤를 잇지 못하고 한참 울었고, 팬들은 그를 다독였다.


"많이 좋아했나 봐요..."



3.
C는 붉게 물들어있는 유골함 앞에서 D를 만났다. 눈물을 뚝뚝 흘리는 C를 본 D는 곁으로 다가와 등을 토닥이며 위로했다. "울지 마요... 환하게 웃는 모습 보여줘야지. 휘성 씨가 속상해해요." 그러고 싶은데 어쩔 수 없이 눈물이 난다고, 이건 그가 이해해줘야 한다고, C는 말했고 D는 미소를 지었다.

둘은 처음 만난 사이지만 전부터 알던 사이 같았다. D는 준비해 온 꽃과 사진들을 바닥에 진열했고, C는 사진을 하나씩 바라보며 눈물을 훔쳤다. 둘은 유골함 앞 바닥에 철퍼덕하고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섣불리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도 아무렇지 않게 꺼내며. 자신이 가장 어두웠던 시절에 그의 공연이 자신을 밖으로 꺼내주었다는 D의 말에 C는 그 마음이 어떤 건지 알아서, 휘성은 이분에게 그런 존재였구나, 싶어서 또 눈물을 후두둑 떨어뜨렸다. C도 입술을 뗐다. 자신에겐 늘 S라는 가수가 마음속 1위였는데, 올해 3월에 자신에게 0위가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고. D는 활짝 웃었다. 한참을 그 앞에 앉아있다 그에게 인사를 건네고 나오는 길,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휘성 씨 슬퍼요? 왜 우는 거예요."


떨어지는 비를 보며 읊조리는 D를 향해 C는 이렇게 말했고, 둘은 미소를 띠며 그곳을 떠났다.


"휘성오빠가 감동받았나 봐요."




4.

A, B, C, D,....... 그를 그리워하는 많은 사람들이 매일같이 그곳을 왔다 가고 있다. 그 앞에서 마음을 전하고, 가져온 사진과 꽃을 앞에 내려놓고, 한참을 바라보고, 눈물도 흘리며. 사랑을 전한다. 그곳에서 처음 만나는 이들은 서로만 이해할 수 있는 슬픔으로 가까워지고 함께 그를 추억하고, 서로를 위로한다. 그는 이제 알까. 본인이 얼마나 사랑받는 존재인지. 남은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간 건지. 어떤 이들은 가수가 아니라 인간 최휘성이라는 존재를 마음에 품고 있다는 걸, 그래서 시간이 흐르는 만큼 그리움이 쌓이고 있다는 걸, 이제는 알까. 당신의 인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을까, 그래서 이젠 좀 편안할까.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한다는 마냥 꿈같은 말
감히 듣고도 잊을 만큼 나는 바보였는데
모자란 너무 모자란 내겐 어색한 내 노랫소리가
많은 사람들을 모아 나를 세우던 그날
커다란 너무 커다란 나 아직 모르던 그 기쁨에
내 모든 게 변해버렸죠

<커다란 너무 커다란> 4집 수록곡, 작사 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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