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계획에 전혀 없던 휴학.
1.
"저 휴학했어요. 그냥 올해는 쉬고 싶어서요."
눈가리개가 벗겨진 경주마는 갑자기 방향을 잃어 멈추고 말았다. 계속 달릴 수가 없던 것이다.
대학 4학년 2학기 개강 첫날.
자꾸만 가라앉는 마음을 멱살 잡듯 붙잡고 학교에 갔다. 학교로 걸어 들어가며 각자의 강의시간표대로 움직이는 사람들을 구경하는데 점점 마음이 답답해짐을 느꼈다.
아 수업 가야돼.
첫 전공 수업을 앞두고 강의 내용물을 프린트하고 전공강의실로 들어갔다. 무거워지는 마음을 애써 무시하고 한숨을 휴우, 하고 쉬었던게 기억이 난다.
다른 학생들이 들어와 자리를 잡고 교수님이 들어오시고 강의 오리엔테이션이 시작되었다. 오리엔테이션을 듣다 강의실을 뛰쳐나왔다. 숨이 너무 막혀서. 나는 달릴 힘도 없고 열정도 없는데 다른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만의 길을 열심히 달리는 것 같았다. 나만 멈춰있는 느낌이 들었다. 어떤 겨를도 없이 나는 바로 과 사무실로 갔다.
"휴학 신청 언제까지인가요?"
"오늘까지예요."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듯이 휴학 신청 가능 기간은 그 날까지였다. 나는 한치의 고민도 없이 휴학 신청서를 작성해서 제출했다.
"네 휴학처리 되셨습니다."
휴학이라니. 마지막 학기를 앞두고, 부모님과 상의도 없이, 갑자기 휴학을 해버렸다. 내 인생계획표에 휴학은 전혀 생각도 안 했던 카테고리였는데 말이다. 내가 저질러놓고도 어안이 벙벙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살고 싶었던 것 같다. 더 이상 내 멱살을 잡고 달리다간 숨이 멎을 것 같았다. 말 그대로 번아웃이 왔던 것이다.
2.
"언니, 나 배가 너무 고픈데 정말 아무 힘이 없어. 우리 집에 와줄 수 있어?"
휴학을 하고 내내 집에 누워있던 적이 많았다. 정말 아무 힘도 없어서, 방 안의 불을 켤 힘도 없어서 컴컴한 채로 멍하니 누워있던 적도 있었다. 무엇을 먹을 힘 조차 없어서 (당연히 요리할 힘도.) 참고 참다가 친한 언니에게 집으로 와달라고 연락을 한 그 시절. 그녀는 한치의 여지도 없이 우리 집으로 와 정말 밥을 해주었다. 걱정과 위로가 담긴 한숨을 내쉬며.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을 보내는 건 참 어색했다. 가장 아픈 채찍질은, 다른 누군가가 아닌 내가 나에게 때리는 채찍질 이리라. 지칠 만도 하지. 숨 막힐 만도 하지. 휴학은 공식적으로 내가 내 의지로 쉬어가자고 멈춘 행위였다. 본격적으로 쉰다고 생각하니 굉장히 홀가분하고 신날 줄 알았는데 웬걸 자꾸만 마음이 아팠다. 아버지의 간경화가 나의 마음을 휘젓기 시작했고, 이제껏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달려온 것 같아 혼란스러웠다.
집에만 처박혀 있는다고 답이 나오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멍하니 있는다고 아버지의 건강이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 혼란의 안개가 걷어질 리가 없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이 시간을 잘 지내보기로 했다. 의미 있는 쉼표를 찍고 싶었다. 어쩌면 쉬는 기간조차도 난 의미를 찾고 싶었던 게 아닐까. 아무 생각 없이 쉰 게 아니었다고. 나 그렇게 어영부영 사는 사람이 아니라고. 또 한 번 애쓰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좋은 방향으로.
한강 주변을 걷고 서울숲에 갔다. 마음의 여유가 없어 잘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도 자주 만났다. 다시 우리나라 남쪽으로 여행도 가고, 마음을 자주 환기시켰다. 나에 대한 고민을 계속 하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건 뭘까, 하고 싶던 건 뭘까, 사소한 것이라도 미루지 말고 그냥 하고 싶었다.
평소에 가보고 싶어서 캡처만 해두었던 카페를 직접 가보고, 가보고 싶던 꽃시장에 가서 난생처음 꽃 한 다발을 사 오고, 보고 싶던 전시를 보기도 하고. 그러나 마음 한구석엔 떨치지 못한 두려움과 불안이 내내 존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