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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나무 Oct 01. 2020

내 인생 대청소 1


본가에는 남아도는 방 하나가 있는데 우리 가족은 자연스레 그 방을 창고처럼 쓰고 있었다. 좁은 방에 쉽게 버리지 못하는 물건들과 내가 남겨둔 짐들이 뒤섞여 그 공간은 그야말로 아무도 들어가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 (심지어 우리 집 강아지도 들어가질 않는다.) 문제는 나의 귀국이었다. 귀국을 하고 자연스레 본가에 들어와서 살게 되었는데 내 방이 없다는 것이다. 결국 나는 그 창고를 써야 했다.


나는 절대로 그 방을 정리하고 싶지 않았다. 내 방으로 만들어두면 이곳을 빨리 나가지 못할 것 같아서. 영국에서부터 온 짐들도 일부러 풀지 않았다. 꼭 필요한 용품들과 옷들만 꺼내놓았고, 잠도 다른 곳에서 이부자리를 펴고 불편히 잤다. 한동안 그랬다.


절대 저 짐들을 풀지 않을 거야. 나는 잠시 여기에 머무는 거야.


본가에서도 이방인처럼 살다가 떠나겠노라고 허무맹랑하게 다짐했다. 그러나 역시 인생은 계획대로 풀리지 않고, 나는 생각보다 더 오래 본가에 머물고 있다. 물론 이 곳을 떠나겠다는 마음은 충분하다.


그러나 문제는, 나의 심리상태였다.


본가에서 가족과 부대끼며 사는 건 거의 10년 만이었고 아무리 피붙이여도 생활방식이 다른 사람들끼리 사는 건 불편한 일이었다. 가족이 반가웠던 것도 잠시였을 뿐, 나는 점점 집이 불편했다. 나의 공간이 필요했다.


결국 창고 같은 방에 겨우 내 한 몸 누일 정도 공간을 만들고 이부자리를 폈고 그 공간은 내 방이 되었다. 창고 혹은 고시원 같은 도무지 애정이 가지 않는 내 방. 내 몸과 마음 하나 쉬이 풀어놓을 곳이 없어서 그런지 본가에 들어온 이후로 잠 다운 잠을 잔 적이 없었다. 나의 불안정한 심리며 충분하지 않은 수면은 몸으로도 나타났는데 아침이면 몸이 붓고 얼굴이 누렇게 뜨고 자주 피곤했다. 고요하고 아늑한 곳에서 꿈 한번 꾸지 않고 깊이 자고 아침에 개운하게 일어나는 게 소원이다.


My london room, 2018 / photographed by Largotree



그래서 더 마음이 둥둥 뜨는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지금 한국에서 적응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웃겨. 한국사람이 고작 잠시 2년 나갔다 왔다고 한국에서 다시 발을 딛고 사는 게 어렵다니. 웃기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다. 오랜만에 머물고 있는 고향도, 본가에서 가족과 부대껴 사는 것도 낯설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과도 공감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야기들이 둥둥 떠오를 때가 있는데 그것도 씁쓸할 만큼 낯설다. (사람들에게도 쉽게 풀어놓지 못하는 이야기를 난 결국 이렇게 글로 쓴다.) 내가 2년 동안 다른 곳에서 살다 올 동안 나의 친구들은 이곳에서 삶을 이어가서 그만큼 달라졌다. 한국에 왔는데도 이방인인 것 같다.


앞으로의 삶에 대해서 이리저리 계획을 세워보지만 막막하다. 근 2년 동안 나이를 잊고 살다가 고국에 발을 디디니 여기저기서 나의 나이를 묻는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조급해지고 머릿속의 생각들은 방울방울 생겨 무거워지곤 한다. 그럴 때면 몸을 더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는데 머리가 무거우니 몸까지 무거워지고 곧 나태해진다. 그만큼 몇 개월 동안 힘들었다.


어차피 상황은 달라지지 않으니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해보자고 나를 보듬어본다.


앞으로의 시간은 지금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다. 계속 둥둥 떠있기만 하면 뭐하나, 어차피 시간은 흐르고, 다시 한국 밖으로 나가고 싶어도 지금은 나갈 수가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 있는 이 자리에서 내 삶을 현명하게 책임을 져야 한다. 앞으로 내가 살아가고 싶은 삶의 모양새를 둥둥 떠올려본다. 그 모양새를 이루기 위해서 지금 이 자리에서 당장 내가 해야 할 것을 생각해본다.


답은 꽤 단순했고, 그중에 하나가 바로 대청소였다. 나는 이 창고를 내 방이라고 받아들였고, 이곳을 치우기로 결심했다. 나는 여기서부터 시작인 거라고 나에게 단단히 일렀다. 그리고 다시 내 방을 치우려고 보니 웬걸, 막막하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치워야 하지. 뭐부터 시작해야 하지.


버릴 것이 너무 많고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모를 정도로 난장판인 이 방이 꼭 내 상태 같다.  후 - 한숨 한번 깊이 들이마시고 내쉰다. 무엇이든 한 번에 짜잔, 하고 쉽게 되는 게 없구나. 그래서 오늘은 작은 부분만 청소했다. 자 내일은 다른 부분. 그다음 날은 또 다른 부분.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어쩐지 이 방 하나 제대로 치우고 새롭게 만들고 나면 나 스스로도 더 자신감이 생길 것 같다. 이렇게 조금씩 나의 인생도 청소하고 정리하고 새롭게 채워나가면 되는 거라고.


나는 지금 내 인생 대청소 중이다.


런던에서의 내 방 그리고 내가 치워야 할 지금 내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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