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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나무 Oct 07. 2020

3년 전 나에게 진 빚

나는 나에게 잔인했다.



2017년 12월 10일 간이식. 이 사건은 내 인생에서 굉장히 큰 사건이었다. 그리고 그 사건이 내게 남긴 J자 흉터는 나에게 고스란히 충격이었다.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과 같았고 지금까지도 간이식 수술은 나에게 그렇게 남아있다. 이상하다. 분명히 자랑스러운 일인데, 나는 큰 일을 한 것인데 말이다.


수술 후에도 정말 친한 친구들 외에 그때 그 일에 대해서 잘 얘기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가족은 물론이고 친한 친구들과도 그때 내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어떤 상태였는지 솔직하게 나누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무엇이 두려웠던 걸까. 무엇이 무서웠던 걸까. 무엇이... 싫었던 걸까.


시간이 흐르고 지금, 글을 쓰다 보니 결국 간이식 이야기를 쓰게 되었고, 나는 한 번의 용기를 더 냈다. 간이식은 결국 글을 써야 하는 나에게는 쓰지 않을 수 없는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으니까. 수술을 결정하게 됐을 때부터 수술을 하기까지의 시간을 글자로 적어 내려 가며 나는 그 시간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아마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글을 씀으로 사건과 감정이 객관화가 되고 정리가 되는 것을. 그리고 때때로 그 글이 나를 위로하고 치유한다는 것을.


수술 이야기를 써 내려가며 3년 동안 느끼지 못했던, 아니, 느끼려고 하지 않았던 감정을 느꼈다. 수술 후 한 번도 살펴보지 않았던 그 시절의 나에게... 갑자기 나는 너무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에게 너무나 잔인했다.


기꺼이 간을 떼어 아버지를 살린 나 자신에게 당연히 해야 할 말을 건네지 않고, 되려 나는 나를 더 다치게 했다.


'너 그 흉터 어떻게 할래. 살성은 또 왜 안 좋아서 흉터도 못생긴 건지. 이거 레이저 수술해야 된다 너.'

'앞으로 목욕탕이나 수영장은 못 가겠지. 어떡하냐. 사람들이 다 너 쳐다보겠어.'

'남자는 어떻게 만날래?'


몸이 회복하는 동안 집에서 쉬면서 운동도 못하고 많이 먹으니 살이 많이 쪄서 나는 나에게 또 매를 들었다. 지금 생각하니 학대에 가까웠다. 나는 나를 학대한 거야. 그랬던 거야.


'하... 먹는 거 하나 조절 못하니? 살쪄가지고 더 못생겨졌잖아. 수술했으면 이참에 살이나 좀 더 빠지게 하지 이게 뭐야. 맘에 안 들어.'


지금에서야 이 글을 씀으로써 그때의 내가 나 자신에게 얼마나 엄격하고 잔인했는지, 나를 얼마나 많이 다그쳤는지, 나를, 소중한 나를, 아끼지도 사랑하지도 않았는지... 알아버렸다.


글에 덧붙일 사진을 찾으면서 사진첩을 열었던 며칠 전이었다. 손가락으로 화면을 올리고 올려 닿은 곳은 2017년 간이식 수술 직후 즘의 내 사진이었다. 수술이 막 끝나고 마약성 진통제로 괜찮았을 때 친구가 바로 병문안을 왔을 때였다. 코에 호스를 끼고 쇄골 쪽엔 바늘이 꽂혀 있고 얼굴이 노란 내가 덤덤한 표정을 지은 채 사진에 찍혀있었다. 그전에 전혀 안 그랬는데 사진을 보자마자 눈물이 쏟아졌다. 뚝뚝 떨어지는 눈물의 의미는 꽉 찬 미안함이었다.


내가 너무 미안해. 정말 미안해.

너무 아팠던 너에게 왜 그렇게 잔인했을까?

네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얼마나 고통스럽고 어두운 길을 걸었는지 내가 잘 아는데 그런 너에게 난 왜 그렇게 몰아세우고 쓸데없이 다그쳤을까? 너무 미안해.


상상을 해본다.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2020년의 내가 2017년 수술을 받고 난 후의 나에게 다가가는 장면을. 그게 가능하다면, 나는 그녀를 그저 꼭 안아줄 것이다. 꽉 끌어안고 그녀가 충분히 다 울 때까지, 괜찮을 때까지 놔주지 않을 거다.


미안해. 장해. 대견해. 견뎌내 줘서 고마워. 다 괜찮아 이젠.


나는 그때의 나에게 어마어마한 빚을 졌다.



Self-portrait,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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